실리콘밸리 VC가 쓴 VC에게 투자받는 법
피칭을 잘하는 게 아니라, VC의 방정식을 읽는 사람이 투자를 받는다.
오늘도 11,000+명의 창업가와 투자자가 주실밸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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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번 주 뉴스레터는 역대급으로 깁니다. 하지만 그만큼 시간과 노하우를 많이 쏟아부었으니, 언젠가는 VC로부터 투자를 받으실 계획이 있으신 대표님들께 꼭 추천드립니다. 솔직히 훨씬 더 길게 쓸 수도 있지만, 그럼 거의 책한권이 나올거 같아서 줄여쓰느라 혼났습니다 ㅎㅎㅎ
아 그리고 저 결정사 “이안과 친구들” 런칭한거 아시죠?(이름을 “이왜진”으로 할까 잠깐 고민했음) 서울, 샌프란, 뉴욕, 엘에이, 시애틀을 이어주는 프라이빗 데이팅 서비스입니다. 이걸 런칭한 계기, 목적, 과정에 대해서는 곧 뉴스레터로 한번 정리해서 공유드릴게요(컨텐츠를 위한 창업?ㅎㅎㅎ)
일주일도 안 되어서 가입자는 1,000명 달성했고, 아직 완전 무료인 기간이니, 주변 싱글들에게 널리널리 알려주세요! 웹사이트 바로가기
VC에게 투자받는 것은 결국 심리싸움입니다.
미국 동부에서 컨설팅을 하다가 실리콘밸리로 넘어온지 8년째, 그동안 미국 VC, 한국 VC, 초대형 VC LP를 모두 경험해봤습니다. 그러면서 Sequoia, a16z부터 어제 만들어진 VC까지 온갖 종류의 VC를 만났고, 그들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의사결정하는지를 안밖으로 직접 경험했고 그 경험들이 공유되는 사이에서 새롭게 느낀점들을 기반으로 오늘은 VC들의 심리상태를 이해하고 그에 따른 펀드레이징 전략과 기술에 대해 간단하게 적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VC업계의 경제학기반 사파이자 신교를 꿈꿉니다.
저는 아직도 회복 중인 경제학 환자(recovering economist)입니다. 학부 때 수학과 경제학을 복수전공하고, 비록 실패했지만, 경제학 석박통합과정을 밟으면서 게임 이론과 계량 경제학을 배웠다 보니, 사상과 사고의 프레임워크 자체가 경제학 기반의 사파에 가깝습니다 (주의: 실제 영생하며 천마가 되는 것이 또한 꿈이다). 이런 저의 인생에 대한 접근법 중 하나를 정리해보자면,
모든 인간은 본인의 행복과 인센티브를 결정하는 ‘효용함수(Utility Function)’가 각자 다를 뿐, 이 세상에 비이성적인 인간은 없다.
따라서, 인생이라는 게임의 본질은, 나조차 잘 모르는 나의 효용 함수를 정확히 파악하고, 의도적으로 가려진 타인의 효용 함수를 꿰뚫는 통찰에 있다.
거기서 우리는 이 복잡한 변수들이 ‘풀 수 있는 연립방정식’이 되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까지 할 수 있다면,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이기는 전략은 간단하다. 답이 없는 문제는 과감히 덮어버리는 기민한 ‘포기’, 그리고 어렵더라도 답이 존재하는 고수익의 난제에는 모든 걸 거는 ‘도전’.
결국 인생의 승패는 문제를 푸는 기술뿐만 아니라, ‘풀어야 할 문제’를 알아보는 선택에도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인생의 모든 거래와 딜은 내 효용함수와 상대의 효용함수의 연립방정식을 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런 사상을 기반으로 펀드레이징 과정에서의 VC들과 창업자들 사이의 연립방정식을 풀어보려고 합니다. 먼저 VC의 인센티브 구조를 뜯어보고, 그 다음 그 구조를 이해한 창업자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하나만 더 짚고 넘어가자면, 이 글의 내용은 모두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 상황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큰 그림에서의 프레임워크를 이해하고 각자의 현실에 맞게 응용하시는 데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Part 1. VC의 방정식 — 인센티브 구조를 뜯어보다
경제학의 게임 이론에서 첫 번째 원칙은 상대방의 효용 함수(utility function)과 보수 함수(payoff function)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최적화하고 있는지 모르면, 내가 어떤 것을 제안하고 어떤 전략을 수립해야될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죠.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때 VC의 인센티브는 밖에서 보면 단순해 보입니다. “돈을 벌면 된다”. 하지만 안에서 보면 변수가 여러 겹이고, 각 겹마다 또 다른 구조의 인센티브가 작동합니다.
오늘은 이 구조를 3층구조의 모델과 2x2 매트릭스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먼저 3층구조의 모델부터 보겠습니다.
1층. VC펀드의 수익모델
당연하게도 VC의 모든 의사결정은 근본적으로 수익모델에 의해 결정됩니다.
1.1 “2/20” and “3X or Die”
VC의 수익 구조는 “2 and 20”이라고 불립니다. 매니지먼트 피(운용보수 Management Fee) 2%와 캐리(Carried Interest) 20%.
먼저 운용보수. VC에 출자하는 LP(Limited Partners, 모태펀드 같은)들의 돈을 모아 100억 펀드를 만들면, 매년 펀드 사이즈의 약 2%가 운용보수로 나갑니다 (물론 2% 이하를 받거나 2% 이상을 받는 펀드도 존재하지만 2%가 평균입니다). 10년이면 약 20억. 이 돈으로 연봉, 사무실, 출장비를 충당하는거죠. 즉, 100억 펀드에서 실제로 투자에 쓸 수 있는 돈은 약 80억입니다.
그 다음 캐리. 매니지먼트 피를 빼고 남은 80억을 투자해서 원금 100억을 LP에게 먼저 돌려준 뒤, 남는 이익의 20%가 GP 몫입니다. 예를 들어 100억 투자받아서 100억 돌려주면 이익이 0억이니까, 캐리도 0억입니다. 200억을 돌려주면 이익이 100억이니까 20억이 캐리인거구요.
보통 실리콘밸리에서는 세 배 리턴을 해야 존재할 가치가 있는 VC펀드라고 인정받습니다. LP관점에서 보았을때 그정도 리턴이 아니면 상대적으로 리스크도 낮고 회수도 빠른데 두 배 정도의 리턴을 보여주는 PE펀드에 투자하는게 훨씬 이익이기때문입니다.
미국 대형 FoF LP인 Horsley Bridge Partners의 데이터에 따르면 상위 5%의 펀드가 전체 VC 수익의 대부분을 만들어내고, 그 상위 펀드들의 공통점은 최소 3X 이상의 리턴입니다. 100억이 300억이 되는 거죠. 이때 GP 캐리는 40억. 파트너가 4명이면 인당 10억. 10년 기준이면 보너스가 연 1억인 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세 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봐야 합니다. Fred Wilson이 “The Venture Capital Math Problem”에서 명쾌하게 풀어놓았는데, 초기 단계 VC는 희석(dilution) 때문에 엑싯 시점에 보통 10% 이하를 보유합니다. 그렇다면 300억을 돌려받으려면 포트폴리오 전체의 엑싯 밸류 합이 3000억 이상이어야 합니다. 즉 100억짜리 펀드가 성공하려면 포트폴리오사들의 엑싯 밸류의 합이 3000억 이상이어야 한다는 말이죠.
따라서 최소 50프로가 아예 망한다는 가정을 하는 VC펀드들의 수익구조상 이들은 100억에서 운용보수 20억을 뺀 80억중에 절반인 40억으로 3000억의 밸류를 받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해내야 합니다. 그렇기때문에 VC펀드는 그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늘 어마어마한 홈런을 찾아 헤메는 거구요.
1.2 펀드 사이즈와 운용보수의 게임
자 그렇다면 반복적으로 세 배짜리 회수를 한다는게 어렵다는 것을 깨닫은 똑똑한 VC들은 어떤 플레이를 할까요?
펀드 사이즈를 키웁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VC들이 본인들의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칠때를 대비한 리스크 헷징 방법입니다. 본인캐리는 성과에 연동되어 있지만, 매니지먼트 피는 성과와 관계없이 10년간 총 20%를 가져갑니다. 그렇기때문에 이전 펀드가 잘되었을 때 다음 펀드 사이즈를 최대한 키워놓으면, 성과와 무관하게 안정적인 보수가 확보됩니다. 1000억짜리 펀드라면 망하더라도 200억을 10년 동안 나눠 가지는 거니까요.
근데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펀드 사이즈가 커지면 필요한 엑싯 밸류도 비례해서 커집니다. 100억 펀드가 3,000억이 필요하다면, 1,000억 펀드는 3조가 필요합니다. a16z에 따르면, 매년 투자를 유치하는 4,000개의 스타트업 중 단 15개가 전체 VC 생태계 수익의 95%를 만들어냅니다. 따라서 펀드가 커질수록 이 극소수의 홈런들을 거의 모두 반드시 포트폴리오에 넣어야 하는 게임이 되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합니다. 수익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VC와 LP는 이 펀드 사이즈와 수익률 사이에서 끊임없는 눈치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창업자 입장에서 이게 왜 중요하냐면, 펀드 사이즈가 클수록 VC는 더 큰 베팅을 해야 하고, 그만큼 더 큰 엑싯을 기대한다는 겁니다. 동시에 어쩌면 펀드사이즈가 급하게 커진다는건 이 VC펀드가 성과보다는 안정에 집중하는 시기로 접어들었다는 신호일수도 있기때문에, 장기적으로 좋은 파트너일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3 캐리 구조라는 변수
이런 운용보수의 퍼즐 위에 성과보수인 캐리 구조에 따라 VC 내부의 인센티브가 또 한번 달라집니다.
Whole fund carry. 구성원들이 펀드 전체에 대한 캐리를 받게 됩니다. 미국의 대부분의 VC가 이 구조입니다. 하나의 딜이 망해도 다른 딜이 커버하면 됩니다. GP의 인센티브가 펀드 전체에 정렬되는 겁니다. 내 딜이든 동료 딜이든 펀드가 잘 되면 다 같이 먹습니다. 이는 vesting기간이 지나면 회사를 떠나도 계속해서 개인에게 귀속됩니다(저도 이전에 있던 미국 펀드로부터 아직 눈꼽받큼 받고 있는게 있습니다)
Deal-by-deal carry. 심사역이 개별 딜마다 캐리가 발생합니다. 내가 한 딜이 곧 내 캐리이고 한국의 대부분의 VC가 이 구조입니다. 그리고 이 캐리들은 보통 심사역들이 퇴사하면 하우스에게 되돌아갑니다.
이 캐리 구조가 뒤에 나올 모든 인센티브의 비중을 결정하는 굉장히 중요한 버튼입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whole fund carry에서는 비합리적인 게 deal-by-deal에서는 합리적일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경쟁 딜에서 밸류에이션을 높여서라도 이기는 것. Whole fund carry에서는 “굳이? 비싸게 사면 펀드 전체 수익률 깎이는데 그럼 내 캐리가 줄어드니까 안돼”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Deal-by-deal에서는 “이 딜이 클로징되면 캐리를 받을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클로징 못하면 0원이다. 어차피 내 돈도 아니고”가 되는거죠.
다시말해 캐리 구조에 따라, 같은 VC 안에서도 조직과 개인의 인센티브가 정렬되기도, 충돌하기도 합니다. 이걸 이해하면 VC라는 괴물을 훨씬 더 정확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2층. 조직과 개인의 인센티브 차이
이제 펀드 단위의 수익모델을 보았으니 펀드와 개인을 나눠서 보겠습니다.
2.1 VC는 원래 개인사업자가 모인 하우스
VC는 일반 기업처럼 하우스 단위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실상 개인 사업에 가깝습니다. 모든 투자건에는 보통 한 사람의 이름이 박힙니다. “그 딜은 누가 했어?” 이 질문에 항상 가장 중요한 한 명의 이름이 나오는거죠.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업자가 힘들 때 전화하는 건 “세쿼이아”가 아니라 “담당 파트너”거든요.
물론 어느정도는 조직이기도 합니다. 펀드라는 하나의 엔티티가 LP에게 수익을 돌려줘야 하고, IC라는 조직적 의사결정 구조가 있고, 펀드의 브랜드가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모든 VC 조직은 “조직 정렬 ↔ 개인 플레이” 스펙트럼 위 어딘가에 있습니다. 어디에 위치하느냐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변수가 바로 1층에서 얘기한 캐리가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지 입니다.
Whole fund carry → 펀드 전체 최적화, 동료 딜도 내 이익, 팀 협업 인센티브
Deal-by-deal carry → 내 딜 최적화, 내 딜만 내 이익, 내부 경쟁 인센티브
2.2 역할별 인센티브
그리고 역할에 따라 같은 VC 안에서도 인센티브가 완전히 다릅니다.
2.2.1 파트너
딜을 리드하고 IC에서 발언권이 가장 큽니다. 보통 Whole fund carry를 가지고 있고 성과가 이에 직결되니 펀드 전체를 위해 딜을 할 인센티브가 강합니다. 다만 바빠서 하나의 딜을 깊이 볼 시간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타이틀 인플레이션이 너무 심해서 다들 파트너라고 하는데, 보통 어느정도의 개별 딜 추진권과 10%이상의 Whole fund carry가 전통적인 파트너의 정의라고 보시면 됩니다.
파트너의 인센티브: 좋은 딜에 이름을 올리는 것, 펀드 전체 퍼포먼스, 다음 펀드레이징에서의 트랙레코드.
2.2.2 시니어(파트너와 주니어 사이 모두)
보통 아주 소량의 캐리를 가지고 있거나 아예 없고, 있더라도 Deal-by-deal carry인 경우가 많습니다. 파트너가 너무 되고 싶습니다. 좋은 딜을 발굴해서 IC를 통과시키고 투자금을 회수하면 승진합니다. 가장 헝그리한 계층입니다. 시니어가 챔피언이 되면 그 열정이 IC에서 큰 힘이 되지만, 파트너만큼의 정치적 자본이 없을 수 있습니다.
시니어의 인센티브: 내 캐리가 되고 승진할 수 있는 딜을 찾는 것, 파트너들과 업계에 인정을 받아 파트너로 승진하면서 이직하는 것.
2.2.3 주니어
리서치를 담당합니다. 과거에는 “이 딜 별로예요” 하면 파트너까지 안 올라가는 gatekeeping 파워가 있었는데, AI로 이 역할이 축소 중입니다. 한동안 핫하고 섹시한 직업처럼 묘사되어 많이 진입하셨는데, 요즘은 코로나 버블시절에 미친 밸류를 찍었다가 망해가는 회사들 뒤치닥거리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주니어의 인센티브: 좋은 리서치를 통해 시니어에게 인정받고 승진하는 것, 업계 네트워크 구축.
2.3 내부 경쟁 — 불편하지만 존재하는 변수
세상사는게 어디서나 그렇듯, 내부 경쟁은 당연히 존재합니다.
특히 Deal-by-deal carry 환경에서는 같은 VC 안에서 심사역들끼리 아예 딜소싱부터 클로징까지 다양하게 경쟁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내 딜이 통과하면 내 캐리이고, 대표의 관심과 시간은 유한한 자원입니다.
내 딜이 통과하려면 다른 사람의 딜보다 매력적이어야 하니까, 심사역 A가 밀고 있는 딜을 심사역 B가 적극적으로 디스할 인센티브가 구조적으로 존재합니다. 같은 편이어야 할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는 구조인거죠.
Whole fund carry 환경에서도 개인 간 경쟁이 없는 건 아닙니다. 캐리 배분 비율, 다음 펀드에서의 지위, 업계 평판. 다만 deal-by-deal만큼 직접적이지는 않습니다. 펀드 전체가 잘 되면 다 같이 공유하니까, 동료의 딜이 잘 되는 것도 결국엔 나한테 좋은 거니까요.
3층. IC라는 정치적 콜로세움
드라마 하우스오브카드 보셨나요? 저의 최애 드라마인데, 저는 VC판도 아주 비슷한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상상도 할수없는 드라마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가십걸을 저리가라수준의 소문과 뒷담화로 얼룩져있는 공간이기도 하죠.
사실상 VC들은 리서치와 레퍼런스도 중요하지만, 특히 초기 투자같은 경우, 이런 팩트, 예측, 기대, 경계, 견제, 개인의 이익, 그리고 다양한 감정의 거대한 소용돌이속에서 서로 치고박고 싸우라고 월급을 받는 글라디에이터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부딪치는 IC(투자심의위원회)는 밖에서 보면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기구이지만, 실제로는 말빨과 확신, 그리고 정치의 게임이 벌어지는 거대한 콜로세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3.1 챔피언 다이나믹스
그렇기때문에 기본적으로 대표님의 딜을 리드하는 VC는 창업자를 대신해서 콜로세움에서 싸우는 챔피언입니다. 그리고 그 싸움의 흐름은 보통 이렇습니다.
1단계. 챔피언이 딜을 프레젠테이션합니다. 이 챔피언들은 창업자의 피치덱을 그대로 쓰기도 하고 본인이 덱을 재구성하기도 하지만 어쨋든 발표자체는 챔피언이 자기 언어로 재구성합니다. 여기서 챔피언의 역량이 창업자의 운명을 결정하고 동시에 창업자가 그들의 챔피언에게 어떤 방패와 칼을 주었는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2단계. 다른 파트너들이 반격합니다. “비슷한 회사 있잖아.” “마켓이 너무 작아.” “알토스가 별로래” 이건 창업자에게 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챔피언에게 하는 질문이죠. 이 대화의 시작과 끝은 챔피언이 이 질문을 얼마나 예상하고 대비했고 나머지 파트너들과 관계, 이전 성과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반영됩니다.
3단계. 챔피언이 반박을 깨야 합니다. 완벽히 준비가 되어있다면 큰 문제없이 흘러갈 것이고, 만약 준비가 되어있지않으면 확인해서 다음주에 업데이트하겠다고 하고 창업자와 확인을 합니다. 동시에 추가 자료와 본인이 가용할수있는 당근이나 채찍이 마련되는대로 반대했던 파트너들을 물밑작업으로 각개격파하기 시작하죠.
그렇기때문에 게임 이론으로 보면 창업자-VC 관계는 2인 게임이 아닙니다. 플레이어가 최소 3인 혹은 훨씬 더 많은 게임입니다. 창업자, 챔피언, 그리고 IC의 나머지. 창업자는 발표는 할수있지만 그 이후 벌어지는 IC에는 직접 들어가지 못합니다. 챔피언이라는 대리인(agent)을 통해 간접적으로 게임에 참여하는 겁니다.
3.2 IC 구조의 스펙트럼
IC가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게임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저는 크게 세 가지 구조로 보았습니다.
3.2.1 합의형 IC
파트너들이 투표하거나 합의하는 구조입니다. 만장일치제도 있고 다수결도 있습니다. 챔피언이 복수의 의사결정자를 설득해야 하는거죠. 패배의 형태는 투표에서 지는 겁니다. 집단지성의 극대화를 꾀하며 잘 구성된 IC는 업사이드와 다운사이드를 잘 밸런스하는 기구가 됩니다. 얼핏보면 민주적이지만 문제는 VC들이 찾는 홈런을 칠 아웃라이어는 합의로 찾기가 힘들다는 것, 그리고 투표에서 지는 이유가 딜 자체보다 다양한 많은 이유가 있다는 부분입니다.
3.2.2 개별형 IC
투자팀이 모여서 회의는 하지만 실제 투자 최종 의사 결정 및 집행을 각 파트너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형태입니다. Benchmark가 가장 대표적인 예이고 세쿼이아와 같은 몇몇 대형 펀드도 펀드 전체는 아니지만 펀드의 일부를 개인이나 팀에게 budget으로 allocate하고 퍼포먼스에 따라 그 규모를 조정합니다. 패배의 형태는 딜파트너가 나머지 파트너들에 의해 설득되는 겁니다. 대표 한명 역량이나 파트너 전체의 합의가 아니라 팀원 각자의 역량을 믿는 구조로 그 무엇보다 팀 구성이 중요하며, 잘 구성된 IC는 아웃라이어를 찾는데 최적화되어있지만, 개인판단에 대한 리스크또한 극대화된 구조입니다.
3.2.3 황제형 IC
최종 의사 결정이 대표 1인에게 집중된 구조입니다. 한국에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죠. 황제형 IC에서는 챔피언이 대표에게 올라가는 정보를 프레이밍합니다. 패배의 형태는 대표에게 도달하기 전에 딜이 필터링되는 것 혹은 IC에서 대표가 거절하는 것입니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대표가 영원히 본인의 역량을 유지하며 이끄는 경우에는 아주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트렌드를 따라가고 모든 것을 이해하기 쉽지않습니다.
창업자의 입장에서는 컨택하는 하우스의 이러한 프로세스를 이해하는 것이 펀드레이징 전략과 플레이북을 짜는데 가장 중요한 변수중에 하나입니다.
3.3 반복 게임의 정치학
IC가 순수하게 펀드의 수익만을 위해 움직이면 좋겠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IC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사람이 모이면 정치가 생깁니다.
“저번에 이 파트너가 내 딜에 반대했지?” 이 기억이 다음 IC에서 그 파트너의 딜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줍니다. 반대로 “저번에 내 딜을 밀어줬으니까” 이번엔 나도 밀어주는 암묵적 교환이 생기는거죠. 특히 합의형 IC에서 많이 보이는 형태입니다.
그리고 대표중심의 황제형 의사결정 펀드에서는 모든 직원이 회의하기보다는 대표에게 딜에 대해 직접 보고하고 개인적인 친분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생길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대표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따라서 투자팀 전체가 아니라 대표 한명의 역량에 따라서 펀드의 성과가 결정됩니다. 당연하겠지만 이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개별형 IC에서는 딜 자체를 두고 견제와 싸움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예 딜소싱 과정부터 내부 인원들끼리 경쟁을 하고 견제를 하는 상황까지 발생하는데, 이는 펀드 전체의 평판에 크나큰 악영향을 끼칩니다. 이때문에 섹터를 나누거나 분야를 명확히 하고 캐리풀을 합침으로써 협업을 유도합니다.
비합리적이고 VC펀드의 성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일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반복 게임(repeated game)에서 나타나는 어쩔수없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같은 파트너들이 수년간 IC에 앉아서 서로의 딜을 평가할 수 밖에 없기때문에 결국은 한 번의 의사결정이 아니라, 관계의 연속인거죠. 여기서 빚과 빚 갚기, 동맹과 견제가 생기는 건 인간의 본성입니다.
중요한 건, IC에서의 정치적 위치가 딜의 성패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좋은 딜이어도, 챔피언이 최근 IC에서 정치적 자본을 다 써버린 상태라면 밀어붙일 힘이 없습니다.
결국 투자는 창업자가 하우스를 설득해서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VC 내부에서 챔피언이 동료를 설득해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챔피언이 누가 되느냐는, 창업자가 그 하우스에 처음 컨택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정해집니다.
좋은 회사니까 알아서 투자받겠지는 그저 순진한 생각이고, 어떤 경로로 누구에게 컨택하느냐가 투자의 성패를 가르는, 그리고 나아가 스타트업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Part 2. VC의 뇌 구조와 심리 매트릭스
자 이제 이 3가지 층이 VC에게 어떤 뇌구조와 심리 매트릭스를 만들어내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앞서말한 이 세개의 층이 교차하면, VC가 딜을 볼 때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두 가지 질문이 탄생합니다.
”나만 보고 있나, 다들 보고 있나?” 컨트래리언인가 컨센서스인가.
”이거 맞을까, 틀릴까?” 결과가 나올 때 나는 어떻게 평가받을까.
이 두 축을 교차하면 VC 심리의 네 가지 상태가 나옵니다.
VC의 꿈은 천재 칸입니다. 아무도 안 볼 때 내가 봤고, 그게 맞았다. 사실상 모든 VC의 꿈과 희망과 돈이 여기에 걸려 있거든요. 초기에 Airbnb를 봤는데 아무도 이해 못 했던 그런 딜. 이게 VC가 이 직업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VC의 악몽은 바보 칸입니다. 나만 보고 나만 믿었는데 틀렸다. IC에서 “이건 된다”고 밀었는데 망했다. 나만 바보가 된거죠. 거품을 알아보지 못했거나, 창업자를 과대평가했거나등등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래 줄로 내려오면 많은 VC들이 편안해하는 구조인 무난한 성공과 방어가능한 실패가 나옵니다. 즉 ”나만 틀리면 커리어가 끝나는데, 다 같이 틀리면 ‘시장이 안 좋았다’로 넘어간다.” 인거죠. 나만 틀리면 끝장이고 다 같이 틀리면 방어가 됩니다. “아, 그때 다들 그랬지. 시장이 그랬고 세쿼이아도 투자했으니까.” 이러면서 넘어가는거죠. Nvidia를 사서 망해도 아무도 Nvidia를 산 걸 욕하지 않습니다. 근데 아무도 모르는 주식에 올인해서 망하면? 본인이 바보이고 모든걸 책임져야합니다.
이 2x2 메트릭스가 사실 VC의 거의 모든 행동을 설명합니다. 가장 무섭지만 아무도 안 하는 딜에 뛰어드는 게 가장 수익률 높기때문에 천재 아니면 바보에 베팅을 하거나, 유명 VC가 투자하면 나머지가 몰려들면서 바보 칸을 회피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세쿼이아가 투자했는데 나도 따라 투자해서 틀려도, “세쿼이아도 틀렸는데 뭐.” 방어가 되거든요.
현실은 첫째줄의 VC와 둘째줄의 VC가 나눠지는 경계는 개인의 성향도 물론 영향을 끼치지만 캐리의 구조가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봅니다.
캐리 구조가 이 매트릭스를 바꾼다
그렇다면 캐리구조는 어떤 영향을 끼치는 걸까요?
Whole fund carry 환경에서는 천재 칸에 도전할 여유가 상대적으로 있습니다. 다시말해 포트폴리오 전체에서 리스크를 공유해주기때문에 좀 더 과감하고 위험한 베팅을 할수있게 됩니다. 그리고 수익을 추구하는 LP들은 이런 압도적인 성과를 선호하고 그게 아니면 그냥 PE나 다른 자산군에 투자하는게 낫기때문에, 애초에 이 플레이는 VC업의 존재 이유 자체를 증명하는거죠.
하지만 Deal-by-deal carry 환경에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 딜 하나가 내 돈이거든요. 컨트래리언 베팅을 했다가 바보 칸에 빠지면 내 캐리가 날아가고 가뜩이나 좁고 이직이 힘든 업계에서 소문이 나고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니 어쩔수없이 컨센서스 쪽으로 기울게 되는거죠. 더군다나 한국같은 경우에는 다같이 망하면 어차피 정부에서 또 다같이 돈을 줄테니까라는 기대심리도 있구요.
창업자들은 이런 VC들의 심리구조에 대한 이해가 펀드레이징 전략을 짜고 변경하는데 큰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자 여기까지 이제 VC의 방정식이 나왔습니다.
1층 VC펀드의 수익구조: 홈런만 찾는 구조적 제약. 캐리 구조가 모든 인센티브의 다이얼.
2층 조직과 개인: 캐리 구조가 결정하는 스펙트럼. 역할별로 다른 인센티브와 내부 경쟁.
3층 IC의 정치학: 챔피언 다이나믹스와 반복 게임의 빚과 빚갚기.
→ VC의 심리와 뇌구조: 이 세 층이 만들어낸 결과물. 나만 바보가 되면 안 된다는 비대칭 공포.
이 방정식을 이해하셨으면, 이제 창업자의 방정식과 연립해보겠습니다.
Part 3. 창업자와 VC의 연립방정식 풀기
전에 아래 글에 정리해두었듯이 VC의 업무는 기본적으로 Source(찾기), Pick(고르기), Win(이기기), Support(지원), Exit(엑싯)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창업자 입장에서 펀드레이징을 다루고 있으니까, Source와 Pick 두 단계에서의 창업자들의 전략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각 단계마다 두 가지를 짚을 예정입니다. 첫째, 이 단계에서 VC의 방정식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둘째, 그렇다면 창업자는 어떻게 플레이해야 하는가.
1. Source — 발견의 단계
1.1 VC의 방정식
Source 소싱에서는 2층의 방정식이 가장 날것으로 분출되는 단계입니다. “내가 먼저 봤다”는 성취감, 이 딜의 챔피언이 되고 싶다는 욕망, 큰 돈을 벌수있을 딜이라는 직관. 남들이 보지 못한 곳에서 기회를 포착했다는 순수한 흥분이 지배하는 단계입니다.
동시에, 심리 매트릭스의 천재 칸에 대한 욕망이 가장 강한 단계이기도 합니다. 아직 리스크 노출 전이니까요. “이거 내가 먼저 봤다”의 쾌감이 가장 순수하게 작동합니다.
근데 소싱이 순수한 발견의 기쁨만으로 돌아가느냐. 아닙니다. 심사역의 머릿속에서는 동시에 이런 계산이 돌아갑니다.
우리 대표님이 평소에 보라고 했던 섹터인가?
대표님이 요즘 승인을 잘해 주시는 분야인가?
IC에서 무난하게 통과될 수 있는 안건인가?
소싱 단계에서 이미 3층의 정치학이 필터로 작동하고 있는 겁니다. 아직 IC에 올린 것도 아니지만, 어쩔수없이 이미 IC를 의식하면서 딜을 고를수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면, 소싱의 양 자체가 정치적 무기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파트너든 시니어든, IC에서 밀 수 있는 딜의 개수와 정치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시간도 유한하고, 매번 “이거 해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크레딧도 유한하니까요.
재미있게도 이를 역으로 이용하는 플레이가 있습니다. 진짜 하고 싶은 딜 하나를 위해, 일부러 다른 딜들을 먼저 IC에 올려서 깔아놓는 겁니다. 어차피 떨어질 걸 알면서도 올립니다. 5개, 10개 연속으로 떨어지면 IC의 분위기가 바뀝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열심히 가져오는데, 하나 정도는 해주자.” 희생양들을 쭉 태운 다음에, 진짜 딜을 프레젠트하는 겁니다. 반복 게임의 빚이 소싱 단계에서부터 설계되는 거죠.
창업자 입장에서 이게 왜 중요하냐면, 내 딜의 챔피언이 IC에 내 회사를 어떤 의도로 올리는지도 체크해야할 중요한 부분이라는 겁니다.
1.2 창업자의 플레이
전략 1. 나에게 맞는 VC를 찾아라.
가장 기본적으로 펀드 빈티지, 사이즈, 주력분야를 확인하셔야 합니다.
펀드 사이즈가 곧 체크 사이즈를 결정하고, 체크 사이즈가 곧 “얼마나 큰 엑싯이 필요한지”를 결정합니다. 1000억짜리 펀드에게 500억 엑싯짜리 비즈니스를 피칭하면, 아무리 좋아도 수익구조가 안 맞습니다. 정답이 없는 방정식인거죠.
동시에 지금이 투자를 시작한지 몇년차인지도 확인하셔야 합니다. 이미 펀드가 런칭된지 3년차라면, 8년차부터 회수압박이 들어오기때문에, 아무래도 빨리 회수가능한 회사들을 우선적으로 볼수밖에 없는 구조거든요.
그 다음, 주력분야를 확인하세요. 펀드 주목적도 중요하고 또 모든 VC에게는 자기만의 sweet spot이 있거든요. 살아온 경험, 집착하는 관심사, VC 이전 커리어. 이 교차점에 내 딜이 맞는 VC를 찾으면, conviction이 자동으로 생깁니다. 설득할 필요가 없는거죠.
처음에는 “아무 VC”가 아니라 “해가 존재하는 VC”를 찾는 게 첫 번째 전략입니다.
전략 2. 챔피언 후보를 골라라
이제 하우스를 정하셨고 거기서 어떤 VC를 1순위로 만날지 고민이 되신다면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해보세요.
1. 이 사람이 내 사업에 대한 이해도와 확신이 있는가?
2. 이 사람이 장기적으로 나와 결이 맞고, 사업과 그 외에서도 도움이 될 역량이 있는가?
3. 이 사람이 지금 내 딜을 위해 IC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인가?
세 개 다 “예”면 챔피언 후보입니다. 하나라도 “아니오”면, 그 미팅은 리서치이지 투자 프로세스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많은 분들이 간과하시는 게 있는데, 해당 하우스에서 최초 컨택이 누구인지가 딜 클로징에 생각보다 훨씬 큰 변수라는 겁니다.
가장 좋은 경로는 원하는 파트너에게 직접 연락해서 만나는 겁니다. 중간 단계가 없으면 그 파트너 입장에서 온전히 자신이 발굴한 딜이 되니까, 더 진지하게 보게 됩니다.
직접 연결이 안 되면 소개를 받아야 하는데, 가급적 VC가 아닌 지인을 통하는 게 좋습니다. VC들은 좋은 딜이면 본인이 하지 남에게 소개시켜주지 않거든요. Late stage VC가 early stage VC에게 넘기는 건 괜찮지만, 비슷한 스테이지나 규모의 VC가 소개해주는 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탑다운과 바텀업의 차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파트너가 관심을 갖고 “이거 한번 봐봐”라고 주니어에게 내려보내면, 그 주니어는 파트너의 관심이라는 후광을 가지고 딜을 검토합니다. 반대로 주니어를 먼저 만나서 밑에서 올라가는 경로는 피곤합니다. 주니어가 딜을 올렸을 때 파트너가 관계에 따라 반감이 생겨서 아예 딜을 못할수도 있고, 다른 파트너가 그 딜에 욕심을 내면서 챔피언 구조가 꼬일 수도 있거든요.
“근데 나는 파트너한테 바로 갈 네트워크가 없는데?” 그럴 땐 주실밸이 있잖아요? ㅎㅎㅎ 물론 저도 설득을 하셔야 합니다. 이 바닥의 인맥 연결은 곧 제 평판을 건 화폐이니까요.
마지막으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도 의사결정권이 있는 파트너와 연결이 안 된다면, 냉정하게 본인과 회사를 되돌아볼 시간입니다. 네트워크도 없고, 중간에서 연결해줄 사람도 설득하지 못하고, 그런 인프라 자체가 없다면, 주니어를 만나면서 시간을 쓸 상황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확신이 있다면, 좀 길더라도 주니어들부터 빠르게 설득하셔야겠지만요.
전략 3. 천재 칸으로 소수를 먼저 유혹하라
이제 하우스와 챔피언이 정해졌다면, 그 사람을 꼬셔야합니다.
“저희 아직 라운드를 안도는데 파트너님께 그냥 먼저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한 마디가 VC의 머릿속에서 하는 일: “아, 나만 보고 있구나. 이걸 내가 먼저 찾은 거구나.” 천재 칸에 대한 희망회로가 돌아갑니다. 일단 비공개 데이터들을 슬쩍 공개하면 VC가 “이건 나만 아는 정보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이 딜이 나만의 천재 딜이 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작업을 할때는 일단 극소수로 시작하는게 중요합니다. 이 작은 VC판에서 여러 곳에 동시에 컨택하면 당연히 소문이 납니다. “그 회사 여기저기 만나던데”라는 순간 천재 칸이 꺼집니다. 이 딜이 “내가 먼저 본 딜”이 아니라 “돌아다니는 딜”이 되니까요.
그렇기때문에 처음에는 결이 딱 맞는 VC를 찾아서, 그들에게 exclusive하게 기회를 주는 게 맞습니다. “파트너님한테만 먼저 말씀드리는 겁니다.” 여러 곳에 연락을 했더라도 “아직 많이 안 돌렸고, 지인들을 통해 몇 군데만 연결된 상황입니다”라고 프레이밍하는 게 좋습니다.
동시에 개인적 인맥을 플레이하는 것도 유효합니다. “선배님, 아니 형님께만 말씀드리는 건데”만큼 학벌 좋은 VC들의 심금을 울리는 한마디는 없거든요. 너무 일찍부터 쓰면 효과가 떨어지니 마치 승상의 세개의 주머니처럼 꼭 필요할때 꺼내쓰세요 ㅎㅎㅎ
여기서 두 가지 어프로치가 갈립니다.
확신과 자신이 있는 경우: 가장 투자받고 싶은 VC의 파트너에게 직접 1대1 우선권을 제안하십시오. 이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끝까지 믿어줄 챔피언을 만드는 건, 처음부터 exclusive한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확신과 자신이 없는 경우: 중요하지 않은 VC들을 먼저 연습 상대로 만나세요. 피드백을 받고, 인터랙션하는 법을 익히고, 피칭 근육을 만드는 겁니다. 1순위 VC에게는 가장 날카로운 상태로 준비해서 가야 합니다.
물론 결국에는 여러 곳에 제안을 뿌려야 할 시점이 올수도 있습니다. 가장 원하는 VC와 협상할 때 잘 흘러간다면 상관없지만, 만약 협상을 해야한다면 그 테이블에서의 협상력이 필요하니까요.
자 그런데 만약 정말 원하는 파트너 3명에게 모두 No를 받았다면? 그때는 본인의 스타트업을 되돌아보고 지금 펀드레이징할 준비가 되었는지 체크를 해야할 시점입니다. 체크를 했음에도 펀드레이징을 적기라고 생각된다면 그때부터는 수로 밀어붙이는 겁니다.
2. Pick — 결정의 단계
여기서부터는 챔피언도 찾았고 어떻게 콜로세움에서 승리할 것인가, IC를 통과해서 클로징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을 간단하게 정리해봤습니다.
2.1. VC의 방정식
Pick에서는 3층(IC의 정치학)이 지배적입니다. 챔피언이 형성되고, IC라는 전장에서 내 딜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동시에 심리 매트릭스의 바보 칸에 대한 공포가 활성화됩니다. “이거 밀었다가 틀리면 나만 바보 되는 거 아닌가?”
이 단계에서 VC의 머릿속은 세 가지 힘이 싸우고 있습니다.
보통 확신이 어마어마하게 높기보단 공포와 정치가 중요한 포인트이긴 합니다. 초반의 기대와 흥분은 어느정도 사그라들었고, 이제 이 딜을 클로징할 수 있을까에 더 집중을 하게 되는 순간이거든요. 이걸 이해하면 창업자의 전략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피칭을 더 잘하는 게 아니라, 공포와 정치를 관리해줘야 합니다.
2.2. 창업자의 플레이
전략 1. 콜로세움의 챔피언에게 무기를 보급하라.
먼저 챔피언을 만들어야 합니다. “세쿼이아니까요”가 아니라, “파트너님이 이 분야를 이해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서요.”라는 말 한마디로 딜을 조직에서 개인으로 바꾸는 순간입니다. 개인의 인센티브를 정확히 건드리는 거죠.
그리고 투자를 요청하기전에 자연스럽게 조언을 구해보세요. “투자해주세요” 전에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시나요?”를 먼저 물어보면, VC가 이 딜에 지적으로 관여하게 됩니다. 내가 아이디어를 줬다, 내 시각이 반영됐다라는 효용감을 느끼게 해주는 순간, 자연스럽게 챔피언이 됩니다.
챔피언이 만들어졌으면, 이제 무기를 보급할 차례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창업자가 일방적으로 무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챔피언이 콜로세움에서 필요한 것을 요청하고, 창업자가 그걸 조달하는 구조입니다. 챔피언은 자기 IC의 역학을 가장 잘 압니다. 어떤 파트너가 어떤 반박을 할지, 어떤 데이터가 있으면 깰 수 있는지, 어떤 고객 레퍼런스가 결정타가 될지. 창업자의 역할은 그 요청에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응답하는 겁니다.
이때 서로가 최대한 정보를 오픈하고 한 팀으로 협업하는 것이 승리의 가장 중요한 요건입니다. 챔피언이 “이 질문이 나올 겁니다”라고 하면, 창업자는 그 질문을 깰 수 있는 답을 최대한 빠르게 줘야 합니다. 챔피언의 열기가 식기 전에 움직여야 하니까요.
전략 2. 바보 칸 공포를 관리하라.
만약 심사역이 “다른 데도 만나고 계세요?”라는 질문을 한다면, 이는 Part 2의 매트릭스기준으로 윗줄(천재/바보 칸)에 넣을지 아랫줄(무난한 성공/방어가능한 실패)에 넣을지를 판단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만약 예스라면, 아랫줄 플레이에 맞는 전략을 짤 것이고 (”알토스도 관심이 있답니다”), 그게 아니라면 윗줄 플레이에 맞는 전략을 짤 것입니다 (”저희가 처음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솔직히 말해야하나라는 생각들을 다들 하시는 것 같은데, 제 의견에는 무조건 솔직하게 말하는 쪽이 더 낫다고 봅니다. 사실 어차피 알게 되거든요. 아시다시피 한국의 VC 커뮤니티는 작습니다. 어차피 이 질문을 하는순간, 천재 칸은 끝났고 아래 행으로 내려왔기때문에, xx년생 VC방과같은 커뮤니티와 주변에 창업자의 회사에 대해서 수소문을 하게 될겁니다. 그럼 어차피 누가 만나는지, 예전에 무슨 행사에서 만났는지, 첫인상은 어땠는지등등 제보가 쏟아져나옵니다. 그렇기때문에 이와 관련해 부풀리거나 거짓을 말하는건 이번 라운드뿐만 아니라 앞으로 업계 평판까지 날려버리는 위험한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하게도 좋은 곳을 만나고 있다면 그건 도움이 되는 시그널입니다. “세쿼이아랑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는 바보 칸 리스크를 확 낮춰줍니다. “세쿼이아도 봤어? 걔들은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있겠지?” 이게 정확히 VC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거든요. 다만, 만나고 있는 곳이 작거나 의미 없는 곳이라면 굳이 말할 필요 없습니다. 작은 곳을 나열하면 오히려 역효과니까요. “아, 좋은 데서는 안 받아주는구나.”
전략 3. 게임의 규칙을 파악하라
챔피언인 VC의 IC 프로세스를 직접 물어보세요. 만장일치제인지 다수결인지, 대표 중심인지, 몇 명이 참여하는지, 얼마나 걸리는지. 이 질문 자체가 “이 창업자는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고 있다”는 시그널이고, 동시에 창업자도 외부에서 상황에 맞는 전략을 짤 수 있게 됩니다. 만장일치제면 파트너 한 명의 반대로 딜이 죽습니다. 다수결이면 과반수만 설득하면 됩니다. 대표 중심이면 대표의 귀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누구인지가 핵심이죠.
그리고 속도를 계속 체크하세요. 보통 일주일 안에 다음 스텝이나 업데이트가 안오면 그냥 No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주니어와 3개월 미팅하면서 “진행 중”이라고 생각하는 건 가장 비싼 착각입니다. 매주 자료를 보내고, 질문에 답하고, 고객 레퍼런스를 제공하고. 3개월 후 IC에 올라갔더니, 파트너가 “이거 처음 듣는데?”
전략 4. FOMO를 자극하라
1순위 VC가 아직 결정을 안 했다면, 다른 곳에서 텀시트를 받아오는 게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렇게되면 “다른 데서 이미 클로징하려는데, 나만 늦으면?”이라는 FOMO의 공포가 활성화됩니다. VC는 단독으로 결정할 때보다 경쟁이 있을 때 빨리 움직입니다. 시간은 VC의 친구이지 창업자의 친구가 아닙니다. 텀시트는 그 시간의 역학을 뒤집는 유일한 무기입니다.
한가지만 덧붙이면 밸류에이션은 레인지로 시작해서 관심도에 따라 조정하시는게 맞습니다. 절대 먼저 숫자를 확정하지 마세요. 너무 높게 잡으면 모두 나가떨어지고, 그래서 다시 내리면 시장에서 관심 없는 매물이라는 시그널이 되어버리고, 처음에 너무 낮게 잡으면 나중에 올리기 곤란합니다. "밸류도 파트너님이 조언해주세요"라고 약간 연애하듯이 “이것 좀 따주세요”같이 VC가 효용감을 느끼게 해주는 게 최선입니다.
전략 5. 다음라운드도 계획하라
마지막으로, 다음라운드도 꼭 계산에 넣으셔야 합니다. 다음 라운드에서 새 투자자가 가장 먼저 보는 건 “기존 투자자가 팔로우온/프로라타를 행사하는가?”입니다. 행사하지 않으면? “안에서 여태까지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안 넣는다고? 뭐가 잘못된거지?”라며 공포가 극대화 됩니다. 역으로, 프로라타 이상을 넣겠다고 하면 강력한 컨센서스 시그널이 됩니다. 지금 투자자를 선택할 때 “이 VC가 다음 라운드에서 프로라타를 행사할 여력과 의지가 있는가?”까지 따져봐야 합니다.
3. Case Study: 연립방정식 풀기
가상의 시나리오를 하나 풀어보겠습니다.
창업자 K. B2B SaaS, ARR 20억, 전년 대비 3배 성장. 시리즈 A를 위해 VC 세 곳과 미팅 중입니다.
VC Alpha. 펀드 1000억, Deal-by-deal carry, 합의제 IC. 시니어 A가 챔피언을 자처했습니다. A는 B2B SaaS 딜을 아직 IC에서 통과시킨 적이 없습니다. Hungry하지만 정치적 자본이 아직 쌓이지 않았습니다.
VC Beta. 펀드 200억, Deal-by-deal carry, 대표 중심 IC. 대표 B가 직접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B의 관심 분야와 K의 사업이 정확히 겹칩니다. 다만 B는 최근 두 개의 딜이 연속으로 폐업하며 부진했습니다.
VC Gamma. 펀드 1000억, Whole fund carry, 합의제 IC. 시니어 파트너 G가 챔피언. G는 최근 두 개의 딜을 연속 성공시켜서 정치적 자본이 충분합니다. 다만 동시에 다른 딜 두 개도 보고 있어서 K에게 쏟는 시간이 제한적입니다.
피라미드로 읽어보겠습니다.
1층 — 펀드 수학. Alpha와 Gamma는 수학이 맞습니다. Beta는 200억짜리 펀드라 팔로우온 여력이 없습니다. 지금은 좋아도 다음 라운드에서 시그널링 리스크가 됩니다.
2층 — 개인 인센티브. Alpha의 A는 인센티브 정렬이 강하지만 IC 영향력이 약합니다. Beta의 B는 대표니까 IC는 문제없지만, 연속 부진으로 바보 칸 공포가 높을 겁니다. Gamma의 G는 IC 파워가 최강이지만, 어텐션이 분산되어 있습니다.
3층 — IC 정치학. Alpha에서는 A가 합의제 IC를 설득해야 하는데 정치적 자본이 부족합니다. 파트너 한 명이라도 강하게 반대하면 끝입니다. Beta에서는 B가 대표니까 IC는 통과하지만, B 자신의 바보 칸 공포가 변수입니다. Gamma에서는 G가 통과시킬 확률이 가장 높지만, 충분히 시간을 쓰지 않으면 IC에서 깊이 있는 변론이 안 됩니다.
K의 전략.
Beta의 B를 먼저 공략합니다. 대표 중심 IC니까 의사결정이 빠릅니다. 근데 B의 바보 칸 공포를 낮춰줘야 합니다. 어떻게? Gamma의 G도 관심이 있다는 시그널을 자연스럽게 흘립니다. B의 머릿속: “나만 보는 게 아니구나. 대형 펀드의 파트너도 보고 있다면 바보 칸은 아니다.”
B에게서 텀시트를 빠르게 받습니다. 그걸 들고 Gamma의 G에게 갑니다. G의 머릿속: “다른 데서 이미 클로징하려는데?” 여러 딜 사이에서 어텐션이 분산되어 있던 G가 갑자기 집중합니다.
Alpha의 A는? 가장 열정적이지만 IC 통과 확률이 가장 낮습니다. K는 A에게 솔직하게 타임라인을 공유합니다. “2주 안에 결정하려 합니다.” A가 2주 안에 통과시킬 수 있으면 경쟁에 남고, 없으면 자연스럽게 빠집니다.
최종 선택. B의 텀시트와 G의 텀시트가 테이블에 올라왔다고 가정해봅시다. G는 Whole fund carry 환경에 있고 정치적 자본이 충분합니다. 향후 5년간 K의 편에 설 구조적 인센티브가 강합니다. B는 대표라서 빠르지만, deal-by-deal 환경에서 B의 다음 부진이 오면 그 압박이 K에게로 전이됩니다. 게다가 200억 펀드라 다음 라운드 팔로우온이 안 되면 그 자체가 부정적 시그널이 됩니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연립방정식을 푸는 방식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결국은 피칭을 더 잘하는 게 아니라, 이런 변수를 읽고 게임을 설계하는 것이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런 사고의 흐름과 팁들은 제가 투자한 회사 대표님들이나 친한 창업자분들과 함께 펀드레이징 전략을 짤때 쓰는 프레임워크들중의 일부입니다. 제가 적극적으로 제 네트워크와 전략을 통해 도와드려서 그분들이 잘되시는 것이 곧 저의 인센티브와 일치하니까요.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 “어떻게 하면 VC에게 투자를 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근데 여기까지 읽으신 분은 아마 느끼셨을 겁니다. 피칭을 잘하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VC라는 조직의 내부 역학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게임을 설계하는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연립방정식의 진짜 해는 펀드레이징 자체의 성공이 아닙니다.
”이 VC의 방정식이 내 방정식과 장기적으로 정렬되는가?”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고 그 답을 찾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아마도 앞으로 10년간 창업자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존재가 될겁니다. 돈만 주고 신경 안 쓰는 사람일 수도 있고, 회사의 방향성과 운명을 결정하는 사람일 수도 있거든요.
결국 이 문제의 본질은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아니라 누굴 만나서 어떤 관계를 만드느냐입니다. 그리고 이건 펀드레이징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좀 더 전반적인 스타트업의 펀드레이징 시장에서의 포지셔닝과 상황별 전략에 대해서 하고싶은 말이 훨씬 더 많은데, 이미 글이 너무너무 길어져서 중요한 부분만 남겨놓았습니다.
더 중요한건, 이 글은 VC들의 방정식중 딱 하나를 풀어본 것에 불과합니다.
여러가지 관점에서 한국과 미국, 소형과 대형, GP와 LP, 그리고 이제 매치메이킹 서비스와 웰니스 브랜드의 창업자로써 다양한 경험을 했고 또 시도하는 백수의 입장에서, 제가 요즘 VC들과 창업자의 방정식뿐만 아니라 우리 업계의 전체의 모든 방정식들을 더 깊고 자세히 정리해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주제에 관심 있으시면 이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시면, 우리 주실밸 커뮤니티에 제일 먼저 관련 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안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