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씹한 모든 Linkedin 메세지들에게: 당신은 누군가가 자신의 평판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가?
글로벌 창업자라면 꼭 알아야할 실리콘밸리의 소개하고 소개받는 프로토콜
본 커뮤니티의 모든 내용은 대중에게 공개된 정보를 기반으로 한 개인적인 뷰이며 투자에 대한 조언이 아닌 전반적인 미국의 시장, VC, 스타트업, 기술 트렌드와 그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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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는 링드인에 쓴 글이 바이럴이 되었습니다. “실력이 없는 인맥은 아무 소용없다”라는 논조의 글이었습니다.
사실 아래 있는 지난 뉴스레터인 “대표병이 정당화되어 버린 시대”와 비슷한 맥락의 글이긴한데, 더 중요한 부분은 전후 맥락도 없이 무작정 저에게 VC/LP/창업자 소개를 부탁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쓴 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실리콘밸리에서 소개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어떻게하면 더 잘 소개하고 소개받을수있는지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들으실수있는 유튜브
네트워킹, 강의, 커피챗, SNS, 바이럴? 결국 실력이 없으면 아무 의미 없다.
이번 주만 해도 “투자 검토 부탁드립니다”, “VC 좀 소개해주세요”, “LP 연결 부탁드립니다”라는 링드인 메시지를 수십통을 받았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읽지 않았습니다.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실리콘밸리에서 소개는 호의가 아닙니다. 화폐입니다.
소개 = 화폐. 이게 무슨 뜻인가?
흔히들 실리콘밸리를 다같이 후드티 입고 자유롭게 커피챗 하는 수평적인 지역으로만 생각하시는데, 사실 이 곳은 전 세계의 자본과 재능이 모여 극단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 곳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원은 딱 두 가지입니다.
시간: 대형 VC의 매니징/제너럴 파트너나 성공한 창업자의 15분은 아주 큰 가치를 지닙니다. 이들에게 검증 안 된 미팅은 단순 시간 낭비가 아니라 다음 유니콘을 만날 기회비용 손실입니다.
필터(Trusted Filter): 이들의 이메일함엔 매일 수백 통의 콜드 메일과 피칭이 쏟아집니다. 이 거대한 노이즈 속에서 진짜 시그널을 걸러낼 방법이 필요합니다.
이때 ‘소개’가 가장 중요한 신뢰 필터로 작동합니다.
다시말해 A가 B를 C에게 소개한다는 건 “B는 당신 C의 15분을 쓸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A가 자신의 평판과 신용을 걸고 보증하는 행위입니다.
이건 사실상 거래입니다. A는 자신이 수년간 쌓은 평판(신용)을 담보로 B를 위해 C의 귀중한 시간을 투자 제안하는 것과 다름없죠.
따라서 좋은 소개였다면 그 투자는 성공적으로 끝나 A, B, C 모두 이득을 봅니다.
하지만 나쁜 소개였다면 그건 위조지폐 건네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A는 C의 시간을 낭비하게 한 대가로 자신의 신용에 막대한 타격을 입고 빚을 지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나랑 친한 사람이야, 좀 도와줘”라고 실력 불문하고 소개 부탁하는 경우를 종종 겪었습니다. 보통 거절하면 서운해하시는데, 이건 마치 “내가 신용은 없는데 친하니까 돈 좀 빌려줘”와 같은 말입니다.
실리콘밸리의 역설: 가장 개방적이면서, 가장 폐쇄적인
지금은 AI 시대인데 왜 소개와 평판이라는 아날로그 방식이 여전히 강력할까요? 저는 이게 사실상 세계의 중심이자 인공지능 기술의 최첨단이라는 실리콘밸리의 역설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비오면 정전되는 것 포함…)
보이지 않는 데이터의 중요성
언뜻보기에 많은 정보가 온라인에 다 공개되는 것 같지만, 피치북, 소셜미디어, 뉴스레터에 공유되는 정보는 이미 시간이 지났거나, 틀렸거나, 일부 표면적 자료일 경우가 많습니다.
창업가나 VC의 실제 평판은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정보는 신뢰하는 사람들 사이에만 Back-channel Reference Check 라는 형태로 존재합니다.
가장 개방적이고, 가장 폐쇄적인 네트워크
이 평판 데이터는 오직 신뢰 네트워크 안에서만 접근 가능합니다. 결정적 투자와 핵심 인재 영입은 CV나 데이터가 아닌 이 레퍼런스 체크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의 소개라는 좁은 문을 통과해야만 가능합니다.
GP/LP들의 단체 채팅방에는 “누구누구 만나 본 사람?”이라는 질문이 매일 올라옵니다. 답은 대부분 전화로 옵니다. 글로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죠. 그리고 그 통화에서는 가감없는 본인의 생각들이 공유됩니다.
“A라는 창업자, 팀원 대하는 스타일이 좀...” “B펀드? 내부적으로 파트너쉽 다이내믹스에 문제가 있어요.” “C는 피치는 잘하는데 실제로는...”
“노코멘트”가 아주 강한 부정의 시그널이 되고, “particular” 와 같은 어른스러운 언어로 공유되는 비밀들은 두사람의 신뢰관계를 더욱 강화시킵니다. 혹시라도 내가 한 말이 새어나간다면 누구를 통해 새어나갔는지 알수있는 장치들을 단어나 이메일에 심어놓기도 합니다.
극단적 지역성(Locality)
이러한 신뢰 네트워크는 극도로 로컬하게 작동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사우스파크 카페에서 나눈 대화, 같은 이벤트에서 마주치며 뮤추얼을 통해 검증된 인맥, off-the-record로 오간 비공개 대화들이 그 사람의 평판을 형성합니다.
다시말해 소개는 데이터로 검증 불가능한, 가장 치명적 정보인 평판과 레퍼런스에 접근하는 유일한 경로이기에 가장 강력합니다.
그럼 이러한 강력한 소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선 실제 예시를 보고 제가 생각하는 프로토콜에 대해 설명해보겠습니다.
예시) 좋은 소개 vs 나쁜 소개
나쁜 소개
(링드인 메세지) “안녕하세요! 저는 AI 스타트업 하고 있는데요, Series A 투자 받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Sequoia나 a16z 쪽 GP 아시는 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다음주에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할 예정인데 빠른 시일 내에 미팅 잡고 싶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포트폴리오나 투자 분야 리서치 없음
왜 Sequoia여야 하는지 설명 없음
본인 회사에 대한 구체적 정보나 자료제공 없음
“다음주에” 보통 한두달전에 연락 추천
보통 링크드인보다 이메일을 찾아서 연락 추천
이 메시지의 숨은 뜻: “난 숙제 안 했는데 네 평판 좀 써서 내 일 해결해줘.” (내가 왜?)
좋은 소개
(이메일) “안녕하세요. 저는 [구체적 도메인]에서 B2B SaaS를 만들고 있는 [이름]입니다.
[투자자]님께서 최근 뉴스레터 ‘[제목]’에서 언급하신 [구체적 인사이트]가 저희 전략과 정확히 맞닿아 있어 연락드립니다.
저희는 지난 6개월간 [구체적 성과]를 달성했고, [투자자명]으로부터 시드 투자를 받았습니다.
[투자자]님께서 과거 [펀드명]에 계실 때 투자하신 [회사명]의 초기 GTM 전략을 연구했는데, 저희가 현재 직면한 [구체적 챌린지]와 유사한 지점이 있더군요.
혹시 15분 정도 [구체적 질문 1-2개]에 대해 조언을 구할 수 있을까요? 다음 주 화/목 오전이 괜찮으시다면 제가 맞추겠습니다.
아래는 간단한 저희 회사 소개 blurb이고 피치덱도 첨부하였습니다.”
무엇이 달랐나?
소개를 요구하기보다 주선자부터 공략함
숙제를 완료했음을 증명 (내 글 읽음, 내 투자 이력 파악)
내가 이해하고 쉽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쉽게 자료를 제공함
왜 나여야 하는지 명확함
상대방 시간 존중 (구체적 질문, 유연한 일정)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분들과는 대부분 미팅을 진행하고, 미팅이 잘 끝나면 투자 검토를 하거나 더 핏이 잘 맞을 것 같은 친구들에게 오히려 제가 먼저 나서서 소개를 해주게 됩니다.
실리콘밸리 소개 게임의 룰: 5가지 프로토콜
참고로 이건 VC를 찾는 창업자에게도, LP를 찾는 VC에게도,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프로토콜이라고 생각합니다.
1. 주선자부터 내 편으로 만들어라
소개는 부탁이 아니라 피치입니다.
우리는 주선자에게 “당신의 평판을 나에게 투자해달라”고 설득하는 겁니다. 나를 소개하는 것이 주선자가 그들에게 빚을 지는게 아니라 “난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안다”는 크레딧이 될 것임을 증명해야합니다.
2. 치열하게 사전 공부하라
본인의 섹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상대방에 대한 이해없이 무작정 연락한다는건 “나는 당신의 신용을 낭비할 사람”이라고 광고하는 겁니다.
기회는 단 한번 뿐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한번도 주어지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체가 당신의 평판이 되고, 당연하게도 두번째 기회 또한 오지 않습니다.
3. 그 사람만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하라
나쁜 예: “SaaS 마케팅 조언 좀 주세요.”
→ 구글 Gemini한테 물어보세요. 뻔한 질문만큼 지루하고 시간낭비인게 없습니다.
좋은 예: “대표님이 Slack 초기에 사용한 bottom-up 전략 블로그 잘 읽었습니다. 저희도 비슷한 시도 중인데, ‘무료 사용자’가 ‘첫 유료 결제’로 넘어가는 순간의 가장 큰 friction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15분만 여쭙고 싶습니다.”
당신의 이해도를 증명하고, 왜 그 사람만이 답할 수 있는지 명확하게 만드세요. 그 사람이 흥미를 가지고 시간을 쓰고싶게 만들어야 합니다.
4. 더블 옵트인(Double Opt-in)을 존중하라
주선자는 당신을 소개해주기전에 소개 대상자에게 항상 먼저 물어봐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이런 이유로] 당신을 만나고 싶은데, 괜찮아?”
동의 없이 두 사람을 이메일에 ‘묻지마 CC’하는 것은 소개 대상에게 사회적 부담을 떠넘기는 최악의 무례입니다. 이런 소개는 소개하는 사람, 소개받는 사람 모두 무례하게 보여집니다.
혹시 거절당해도 서운해하지 마세요. 그건 단지 다음 소개를 위한 피치는 더 날카로워야 한다는 뜻일뿐입니다.
5. 마무리하라 (Close the Loop)
미팅 후, 반드시 주선자 A에게 업데이트해주세요.
“C님과 만났고, [구체적 내용]에 대해 훌륭한 조언 받았습니다. 소개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주선자 A는 C로부터도 피드백을 받을 것입니다. “B님 괜찮던데? 어떻게 만났어?”
이게 주선자의 투자가 성공적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다음 소개를 받을 수 있게되고 이게 바로 좋은 평판이 쌓아가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실리콘밸리는 단지 개방적인 네트워킹 파티의 성지가 아닙니다. 실제로는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소개 거래의 정글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네트워킹 파티에서 연락처 수집하는 게 아니라 평판 구축이어야 합니다.
실력이 없으면 평판도 없습니다. 평판이 없으면 소개도 없습니다. 소개가 없으면 이 생태계의 게임에 참여조차 못 합니다. 냉정하지만, 이게 이바닥의 룰입니다.
그리고 이 거대한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 우리가 답해야할 질문은 하나입니다.
당신은 누군가가 자신의 평판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가?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안 드림




매일 보고 있으나 감사표시가 늦었어요. 오늘 레터 고맙습니다 :) 상식이지만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내용을 꼭 집어주셔서 좋았어요.
정신번쩍 들게하는 글 감사합니다. 저는 블룸이뉴스레터를 쓰는 서브스택 초보자입니다. 이안님의 글에 영감을 받아서 좋아요,팔로워 숫자가 늘어나는 콘텐츠를 저만의 생각으로 풀어내려고 하는데 인용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