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노키아 꼴 난다?” 너무 삼성의 나라적인 생각 아닌가요?
기술은 결국 수렴하지만, 애플이 주는 '경험'은 복제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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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랜만에 애플 이야기를 또 가지고 왔습니다. 아래는 제가 거의 2년 전에 썼던 애플 이야기인데 요즘 또 이 토픽이 화제가 되어서 다시 공유해 드립니다. 참고로 저는 애플을 포함한 어떤 회사도 개별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애플이 노키아의 길을 간다?” 너무 삼성의 나라적인 생각 아닌가요?
최근 “애플은 노키아의 길을 갈 것이다”, “애플을 포함한 빅테크 절반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유튜브 채널(지식인사이드)의 김대식 교수님 영상이 화제였나 봅니다. 주변에서 영상을 많이 공유해 줬고, 저도 좋은 강의를 통해 감사하게도 많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사실 이 영상뿐만 아니라 최근 생성형 AI 붐이 일면서 많은 분들이 “자체 LLM 경쟁에서 뒤처진 애플은 끝났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계십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이건 굉장히 ‘한국적인 시각’에서 나온 걱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미국 내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큰 이슈로 주목을 끌거나 대세와는 아주 동떨어져 있다고 느껴집니다.
솔직히 진짜 놀라운 두 번 접히는 트라이폴드 갤럭시를 만들어내고, 돈 버는 것만큼 기술 스펙, 특허, 하드웨어 제조 역량을 중시하는 삼성의 나라에서는 애플이 무너져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수도인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리고 실제 미국 시장에서 바라본 애플의 위상은 노키아 시절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1. “애플 망한다”는 분들, OpenAI도 맥부터 만들었습니다
지금 전 세계 AI 기술을 최전선에서 이끄는 개발자들은 무슨 노트북을 쓸까요? 고성능 GPU가 달린 두꺼운 윈도우 노트북? 아뇨, 압도적인 다수가 맥북을 씁니다. 여기서는 개발자가 윈도우나 안드로이드를 쓰면 서로 신기해하고 걱정(?)을 해줍니다. “도대체 어떤 회사를 다니는 거니? 힘내!” (물론 엑셀을 써야 하는 금융권은 아직 ThinkPad가 많습니다.)
OpenAI의 ‘애플 퍼스트’ 전략: 실제로 OpenAI는 ChatGPT 데스크톱 앱을 macOS용으로 먼저 출시했습니다. 당시 커뮤니티와 분석가들은 그 이유 중 하나로 “OpenAI 엔지니어와 연구원들의 압도적인 다수가 맥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내부 개발 환경이 맥 중심이니까 자사 프로덕트도 맥 환경에 최적화해서 먼저 내놓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던 거죠.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표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채용 시장에서 “윈도우 노트북을 지급하면 엔지니어들이 그 회사의 오퍼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맥북은 업계 표준입니다.
개발 워크플로우: AI 개발자들은 로컬(노트북)에서 가벼운 코딩과 프로토타이핑을 하고, 무거운 연산은 클라우드나 리눅스 서버에서 돌립니다. 이 과정에서 유닉스 기반이면서 하드웨어 완성도가 높은 맥북이 윈도우보다 선호됩니다.
개발자에게 필요한 건 ‘서버와 매끄럽게 연결되는 유닉스 환경’과 ‘카페에서 하루 종일 코딩해도 버티는 배터리’, 그리고 ‘절대적인 안정성’입니다. 이 기준에서 애플 실리콘을 탑재한 맥북을 대체할 기기는 지구상에 없습니다.
2. 노키아에겐 없었고 애플에겐 있는 것: '벗어날 수 없는 감옥'
노키아와 애플이 다른점은 노키아는 스마트폰이라는 혁명에 대응하지 못했지만, 애플은 애플 실리콘과 구글과의 협업을 통해 인공지능 혁명에 현명하게 대응하고 있고,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생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피부로 덜 와닿을 수 있지만, 미국 시장에서 아이폰과 맥북의 위상은 그야말로 압도적입니다. 단순한 점유율의 문제가 아닙니다. 애플이 구축한 생태계는 신기한 기능 몇 개 탑재한 단발성 AI 하드웨어(Rabbit R1이나 Humane AI Pin 같은)가 감히 넘볼 수 없는 벽입니다.
저만 해도 과거엔 픽셀폰에 ThinkPad를 쓰며 엑셀을 돌리고, “애플은 감성팔이에 가성비 떨어지는 바가지야, 이 앱등이들아!”라고 외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애플 생태계를 빠져나갈 구멍이 사라졌습니다.
아이폰 하나만 써보신 분들은 “그래봤자 별 차이 없겠지”라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폰, 애플워치, 맥미니, 맥북에어, 아이패드, 에어팟, 애플TV, 에어태그를 쓰고 있는 제 입장에서는 기기 간의 연동이 윈도우나 안드로이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직관적이고 우아한 연결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도 제 맥북에어는 침대 위에, 맥미니는 오피스에 있는데, 오피스에서 스크린 쉐어로 맥북 화면을 띄워놓고 두 컴퓨터를 오가며 작업합니다. 필요하면 맥북에어를 맥미니용 키보드와 트랙패드로 쓰고, 아이폰을 웹캠으로 쓸 수도 있어요. 여기서 보던 화면을 거실 애플TV로 자연스럽게 옮겨서 일할 수도 있고요.
미국 10대들이 안드로이드 폰을 쓰면 ‘왕따(Green Bubble)’ 취급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농담이 아닙니다. 이 견고한 락인 효과와 기기 간의 물 흐르는 듯한 연동성은 노키아 시절엔 존재하지 않았던 강력한 해자입니다.
이 생태계에서 최고의 연동을 경험해 보면, OpenAI가 신기한 디바이스 하나 내놓는다고 이 모든 게 변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깁니다. 오히려 OpenAI의 고민은 “애플 생태계에 어떻게 한자리를 차지할 것인가”일 겁니다. 구글은 이미 그 첫발을 뗐고, 둘의 협업과 경쟁 사이 줄타기가 기대됩니다.
직접 써보며 느낀 점은 명확합니다. “기술은 수렴하지만, 소비자 경험은 수렴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인류 최고의 기술인 인공지능은, 더 편하고 직관적이고, 우아하고 예쁜 것만이 살아남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사족이지만, 인간의 암기능력과 업무능력 상당 부분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수록,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고 자기관리가 되고 호감과 신뢰를 주는 사람이 더 유리해질 것 같습니다. 요즘 웰니스 트렌드가 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이고요. 결국 인간도 ‘가진 기술’보다 ‘전달하는 경험’으로, 즉 소프트스킬로 판단받는 세상이 올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3. 모델은 범용재(Commodity), 인터페이스가 왕이다
사파리가 구글 검색 쓴다고 애플이 망했나요?
많은 분들이 애플이 자체 파운데이션 모델 경쟁에서 OpenAI나 구글에 밀리는 것을 보고 ‘기술적 종속’을 우려합니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봅시다. 애플은 아이폰 출시 이후 지금까지 사파리 브라우저의 기본 검색 엔진으로 구글을 사용해 왔습니다. 자체 검색 엔진을 만들 기술이 없어서였을까요? 구글에 종속되어서 애플이 망했나요?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애플은 구글에게 ‘전 세계 아이폰 유저들에게 검색 기회를 주는 대가(Traffic Acquisition Cost)’로 매년 수십조 원을 챙기는 ‘슈퍼 갑’의 위치를 유지했습니다. 검색 기술은 구글 것을 쓰지만, 그 검색으로 들어가는 문(Gateway)은 애플이 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AI 시대의 게이트키퍼
AI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애플이 굳이 수조 원을 태워가며 구글보다 조금 더 나은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구글의 제미나이나 OpenAI의 GPT를 가져다 쓰면 됩니다. 대신 애플은 그 AI가 구동되는 ‘인터페이스’와 ‘사용자 경험’을 장악하면 그만이에요. 소비자는 “이 폰에 몇억 개의 파라미터가 들어갔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내 말을 얼마나 찰떡같이 알아듣고, 내 삶을 얼마나 편하게 해주느냐”가 중요하죠.
최근 애플과 구글의 계약을 보면, 애플이 구글 제미나이의 기술을 이용해 애플 내부 프라이빗 서버에서 “애플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드는 구조입니다. 소비자 데이터가 구글에 넘어가거나 제미나이에 영원히 의존하는 게 아니라, 애플만의 데이터베이스 안에서 애플만의 모델을 만드는 데 제미나이 기술을 활용하겠다는 거죠. 비용은 매년 약 $1B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애플이 사파리 기본 검색 대가로 구글에서 받는 것으로 알려진 $20B의 1/20에 불과합니다.
종속? 오히려 애플이 갑이다
“영원히 구글에 종속된다고요?” 여러분, 새로운 모델이 나올 때마다 업계가 떠들썩하지만, 냉정하게 개인 소비자로서 2024년 이후 압도적인 모델 성능 변화를 체감하셨나요? UI 개선, 웹 브라우저 연동, 새로운 피처 같은 “옆그레이드”는 많았지만, “앱스토어를 대체한다”던 예측들은 다 감감무소식입니다.
“커머스가 AI 회사로 넘어간다고요?” 기업 입장에서 자사 트래픽을 전부 AI 회사에 넘겨주고 싶을 리 없습니다. 결제까지 빼앗기면 존재 이유가 사라지잖아요. 그걸 원했다면 이미 구글이나 페이스북 광고에서 플랫폼 내 직접 결제를 만들지 않았을까요? 결국 과거처럼 광고를 통해 기업 랜딩페이지로 유입시키고, 거기서 결제받는 구조를 원할 겁니다.
“AI 회사의 권력이 더 크다고요?” 그러기엔 AI 시장 경쟁이 치열합니다. OpenAI는 선발주자로서 높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고, Claude는 B2B와 코딩 영역을 지키고, 구글이 번들링과 자본력에 성능까지 더해 빠르게 치고 나가고 있습니다.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AI 회사들의 권력이 서로 견제되는 상황이에요. 구글이 이기면 어쩌냐고요? 괜찮습니다, 딥시크도 있잖아요. 이미 성능이 수렴해가고 있어서 누군가가 성능만으로 압도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따라서 AI 시대에 애플은 어느 한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을 수 있고, 플랫폼들이 경쟁하는 사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습니다.
최고로 빠른 기술을 추구하는 건 엔지니어의 영역이지만, 최고의 소비자 경험을 추구하는 건 애플의 영역입니다. AI 시대에도 승패는 여기서 갈릴 것이고, 애플은 구글(혹은 OpenAI)과 협력하며 여전히 선두에 서 있을 겁니다.
4. 애플이 디자인 회사라서 망하는 게 아니라, 디자인 회사이기 때문에 살아남을 겁니다.
지식의 민주화, 기술의 수렴
기술 중심 사고에 갇힌 사람들은 “애플은 기술 회사가 아니라 마케팅 잘하는 디자인 회사”라고 비아냥거립니다. 저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외칩니다. “오히려 좋아!”
OpenAI, 구글, Anthropic이 경쟁하며 AI 모델의 성능을 미친 듯이 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건 ‘지능의 민주화’입니다. 이제 누구나 API만 연결하면 아인슈타인급 지능을 내 서비스에 탑재할 수 있어요. 지구 반대편의 1인 개발자도 구글과 똑같은 LLM을 쓸 수 있는 세상입니다. 기술적 장벽은 점점 낮아지고, 하드웨어와 알고리즘 성능은 상향 평준화되어 수렴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슈퍼 두뇌’를 가질 수 있다면, 차이는 어디서 벌어질까요? 결국 그 두뇌를 어떻게 포장해서 사용자에게 전달하느냐, 즉 소비자 경험과 미감입니다.
OpenAI의 기술적 우위는 구글에게 한 달 만에 따라잡히지만, 애플의 문화적 우위와 압도적인 사용자 경험은 10년이 지나도 삼성이 복제할 수 없었습니다. 기술은 범용재가 되지만, 취향과 경험은 복제할 수 없거든요.
한국이 애플을 보며 배워야 할 점은 ‘자체 모델 개발’이 아니라, 바로 이 ’기술을 포장하는 미감과 효율’입니다.
기술과 기능을 넘어 경험과 취향의 시대
기술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이 기능이 되냐 안 되냐”가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넘쳐흐르는 지금은 “얼마나 아름답고 직관적으로 작동하느냐”가 승부를 가릅니다. 애플이 무서운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들은 기술을 자랑하지 않아요. 대신 기술을 보이지 않게 숨기고, 사용자의 감각과 감성을 건드립니다.
사파리 검색 엔진이 구글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이폰을 켰을 때 느껴지는 그 매끄러운 화면 전환, 완벽한 폰트, 기기 간의 물 흐르는 듯한 연동성. 이것은 엔지니어링의 영역을 넘어선 ‘예술’의 영역이자 ‘디자인’의 승리입니다.
기술 만능주의의 시대가 저물고, ‘취향’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엔지니어링만으로는 부족해요. 인문학적 감성, 디자인적 사고, 그리고 집요한 디테일이 기술 위에 얹어져야 합니다.
저는 이 시대를 격하게 환영합니다. 이제야말로 스펙 한 줄보다 ‘아름다움’과 ‘경험’이 돈이 되는, 진짜 선수들의 무대가 열렸으니까요.
GPT, Gemini, Claude 셋 다 각자 잘하는 게 있지만, 솔직히 셋 중 둘이 없어져서 하나만 써야 한다고 해도 “죽을 것 같다”고 느끼는 소비자는 없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셋 중 하나가 인터페이스가 불편하고 키보드가 잘 안 먹고 클릭이 잘 안 된다면, 그 AI는 버려지겠죠. 사이버보안 역사상 가장 큰 인수 딜 중 하나인 Wiz의 경우도, 기술적으로 경쟁사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부분은 없습니다. 다만 개발자들의 반응은 “가장 쓰기 편하다”, “가장 보기 좋다”, “가장 직관적이다”가 차별점이었습니다.
기술 평준화 시대에 변별력은 스펙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옵니다.
삼성 갤럭시의 스펙이 아이폰보다 떨어져서 미국 시장에서 안 팔리는 게 아닙니다. 기술적 수치는 따라잡거나 앞지를 수 있어도, 애플이 주는 그 미묘하고도 절대적인 사용자 경험은 쉽게 복제할 수 없습니다.
애플은 언제나 ‘퍼스트 무버’가 아니라 ’베스트 무버’였습니다. MP3 플레이어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아이팟으로 시장을 정리했고, 스마트폰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아이폰으로 세상을 바꿨습니다.
AI도 똑같습니다. 누가 먼저 모델을 내놨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가 AI를 일반 대중이 쓰기 편하게, 마치 마법처럼 포장해서 내놓느냐가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건 애플이 제일 잘합니다.
오히려 더 많은 디자이너가 창업해야 한다
저도 몇 년째 “AI 기술보다 중요한 건 소비자 경험”이라고 외쳐왔는데, 이걸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인물은 에어비앤비 CEO 브라이언 체스키입니다.
그는 Config 2023에서 디자이너들에게 “서비스 제공자에 머물지 말고, 직접 회사를 경영하고 이사회에 들어가라”고 촉구했습니다. “디자이너는 단순히 ‘어떻게 보이는가’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논지였습니다. YC의 개리 탄 역시 “More Design Founders”를 공개적으로 요청하며 이 흐름을 지지했고요.
디자이너가 단순히 미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걸 넘어, 비즈니스와 프로덕트의 핵심 결정권자가 되어야 한다는 ‘Design-Led Company’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5. 확장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최적화'의 괴물이 온다
확장의 시대에서 최적화의 시대로
일리야 수츠케버, CES 2025, 스탠포드 HAI, 그리고 예전 이 뉴스레터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AI 모델이 사이즈로 승부하는 확장의 시대에서 비용 감소와 사이즈 감소의 최적화 시대로 들어갔습니다. 이 트렌드는 점점 가속화될 것이고, 애플이야말로 최적의 포지션을 가진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온디바이스 AI를 위한 최고의 그릇
AI 트렌드는 결국 클라우드에서 ‘온디바이스(내 기기에서 직접 구동)’로 넘어오게 됩니다.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고, 속도나 비용 면에서도 그렇고요. 여기서 애플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애플은 기술이 없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애플 실리콘(M 시리즈 칩)을 보십시오. 전성비(전력 대비 성능)와 뉴럴 엔진 최적화 측면에서 애플은 이미 수년 전부터 온디바이스 AI를 위한 하드웨어를 차근차근 준비해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점점 작은 오픈소스 모델들을 로컬에서 써보고 있는데, 최고의 성능은 아직 NVIDIA GPU지만 최고의 최적화는 애플 실리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시무시한 크기에 팬이 미친 듯이 돌아가고 전기를 마셔대는 윈도우 PC보다, 이 작고 아름다운 디바이스에서 큰 발열 없이 빠르고 깔끔하게 AI 모델을 돌릴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AI가 ‘음식’이라면 디바이스는 그 음식을 담는 ‘그릇’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불편한 그릇에 담기면 먹기 힘들잖아요. 애플은 지금 지구상에서 AI라는 음식을 가장 맛깔나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지금 애플 걱정은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
“애플 망한다”는 소리는 결국 기술 스펙만 보고 시장의 본질인 ‘경험’과 ‘생태계’, 그리고 미래 AI 트렌드를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걱정입니다. 사파리에 구글 검색을 심어놓고도 모바일 황제가 되었듯, 애플은 AI 시대에도 가장 세련되고 안전한 방식으로 왕좌를 지킬 것입니다.
애플 실리콘이라는 강력한 하드웨어 위에서, 구글의 강력한 모델을 가져와, 애플만의 미친 UX로 버무려 내놓을 미래. 저는 오히려 지금이 애플 생태계가 AI를 만나 만개하는 시점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애플 망한다는 걱정은 잠시 넣어두셔도 됩니다. 그들은 AI라는 맛있는 음식을 가장 비싸고 우아하게 팔 수 있는 유일한 식당이고, 이미 다 계획이 있거든요.
우리도 기술 사대주의를 버리고, '소프트파워'로 승부할 때
한국인에게 가장 유리한 판이 깔렸다
저는 이 거대한 흐름의 변화를 보며 가슴이 뜁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은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소비자이자, 가장 섬세한 미감을 가진 민족입니다.
투박한 기능을 예쁘게 포장해 내는 능력
사용자의 눈빛만 봐도 원하는 걸 캐치해내는 ‘눈치’ 기반의 UX
디테일 하나로 명품과 싸구려를 구분해 내는 심미안
기술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소프트파워로
우리는 기술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K-뷰티만 봐도, K-푸드만 봐도 우리는 이제 기술 위주의 국가가 아니라 소프트파워의 국가입니다. 이번 골든글로브에서 <K-Pop: 데몬 헌터스>가 2관왕을 차지한 것만 봐도 명확하지 않습니까? 기술력 하나만으로 된 게 아닙니다. 스토리, 음악,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미감’이 세계를 사로잡은 것입니다.
OpenAI가 만드는 모델을 우리가 똑같이 만들 필요도, 만들 수도 없습니다. 대신 우리는 애플처럼 집요한 ‘미감’과 한국인 특유의 ‘효율’로 승부해야 합니다.
기술은 도구일 뿐입니다. 그 도구를 가지고 ‘어떤 문화를 만들고, 어떤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어떻게 팔고 돈을 벌 것인가’. 이것이 제조업의 늪에 빠진 한국이, 그리고 애플 위기론을 비웃으며 우리가 바라봐야 할 진짜 미래입니다.
안타깝게도 미감, 감각, 소비자 경험처럼 숫자로 측정하기 어려운 가치는 한국에서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특히 주요 의사결정권을 가진 세대가 익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분들이 커리어를 쌓던 시절에는 기술력과 특허 숫자가 곧 경쟁력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아이폰이 나온 게 2007년입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났습니다. “디자인 회사”를 폄하하고 “감성팔이”라고 비웃던 사이, 그 “디자인 회사”는 시가총액 세계 1위가 됐고, 한국의 “기술 회사”는 그 격차를 좁히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특허 몇 개보다 사용자가 “이거 쓰기 좋다”고 느끼는 5초의 경험이 더 큰 해자가 되는 시대입니다. K-콘텐츠가 세계를 휩쓴 것도 기술력이 아니라 ‘취향을 읽는 능력’ 덕분이었습니다.
다음 세대에게도 더 많은 기회를 주세요. 그들은 이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네이티브하게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부록] 로봇이 장인을 대체한다? AI 거품에 속지 마세요
사족일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뉴스레터로 쓸지도 몰라서 예고편을 적어둡니다. 제가 본 영상에서 “한국 제조업 장인들의 숙련된 데이터를 AI에 학습시키면 기회가 온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방향성에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LLM 기술로 로봇을 돌린다”는 건 지나친 낙관론이자, 펀드레이징을 위한 AI 생태계 리더들의 과대광고일 수 있습니다.
환각은 물리 세계에서는 재앙이다
냉정하게 짚어봅시다. 현재의 LLM은 근본적으로 ‘확률적 앵무새’입니다. 가장 그럴듯한 다음 단어를 예측할 뿐, 추론, 상상, 생각, 사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환각이 발생합니다.
챗봇의 환각: 텍스트가 틀리면 고쳐 쓰면 그만입니다.
로봇의 환각: 수천 도의 쇳물을 다루는 로봇이, 혹은 수 톤짜리 프레스를 다루는 로봇이 ‘확률적으로’ 실수한다면? 그건 에러가 아니라 재앙입니다.
공장은 반복 수정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미지 생성 AI(Midjourney)나 영상 생성 AI(Sora)는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수십 번 프롬프트를 고치며 ‘가챠’를 돌려야 합니다. 그런데 공장에서 용접 로봇이 “어, 이번엔 각도가 좀 빗나갔네? 다시 해볼게”라며 수십 번 반복한다고요? 물리 세계는 가상 세계와 달리 실수가 곧 비용이고 위험입니다.
아직 연산속도가 충분히 빠르지 않다
현재 LLM의 추론 속도는 물리 세계에서 요구되는 실시간 대응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실험실의 통제된 환경과 달리, 실제 공장 현장은 수백 가지 변수가 동시다발적으로 변합니다. 쇳물의 온도, 컨베이어의 속도, 부품의 미세한 위치 편차—이런 것들에 ‘몇 초 뒤’ 대응하는 건 이미 사고입니다. 로봇은 밀리초 단위로 판단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지금의 LLM 추론 속도로는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물론 장기적으로 해결되겠지만, 과연 이게 LLM 레벨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인가도 확실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트랜스포머’를 넘어서는 혁신이 필요하다
지금 실리콘밸리 AI 리더들이 “로봇 시대가 온다”고 외치는 건, 어쩌면 거대한 모델을 유지하기 위한 펀드레이징용 과대광고일 수 있습니다.
테슬라 FSD(레벨 2)와 Waymo(레벨 4)가 진정한 완전자율주행으로 가기 위해 수년간 데이터를 모으고 새로운 아키텍처를 고민했듯, Physical AI도 단순히 LLM을 로봇에 연결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언어 모델의 ‘확률적 생성’ 방식을 넘어, 물리 법칙을 이해하고 제어하는 새로운 프레임워크—제2의 트랜스포머급 혁신—이 나오기 전까지, 로봇이 장인을 대체하는 미래는 아직 멉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이 한계를 잘 알기에, 현재 프레임워크를 넘어선 “월드 모델”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습니다. 얀 르쿤을 비롯한 최고의 인재들이 이 분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그만큼 현세대 AI로는 풀기 쉽지 않은 문제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산업계의 “로봇청소기” 모먼트가 먼저 온다
결국 지금 당장은 General AI나 Humanoid보다는, 물리적·작업적 제약(constraint)이 명확히 정의된 환경에서 특정 공정에 특화된 로봇이 먼저 대중화될 것입니다.
소비재 시장의 로봇청소기처럼, 산업 현장에서는 이미 자동차 공장의 용접 로봇, 반도체 팹의 웨이퍼 핸들링 로봇, 물류 창고의 피킹 로봇이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각도, 이 온도, 이 압력’이라는 파라미터가 확정된 반복 작업에서, 이 로봇들은 수십 년간 검증된 제어 시스템 위에 AI를 얹어 효율을 높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특화 로봇들에서 수집된 실전 데이터가, 더 범용적인 로봇으로, 나아가 LLM을 넘어선 새로운 AI 패러다임과 함께 휴머노이드의 시대로 가는 발판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마치 메타버스 광풍 당시 우리 모두가 가상 서울 부동산을 사야 할 것 같았지만, 결국 메타의 AR 안경과 애플 비전프로 같은 spatial computing으로 만족하게 된 것처럼요.
진짜 혁명은 화려한 데모와 큰소리치는 허풍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제약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묵묵히 작동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재미있는 설명과 깊이 있는 통찰로 좋은 영감을 주신 지식인사이드와 김대식 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안 드림





이안님,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늘 글은 특히 더 좋네요.
특히, 사용자 경험에 대한 중요성에 관한 부분, AI 시대에도 여전히(어쩌면 이전보다 더) 인터페이스가 중요하고, 인터페이스가 사용자가 AI로 진입하는 게이트키퍼 역할을 한다는 부분에 매우 공감이 갑니다. 저는 AI를 담는 vehicle(?), 그릇(?, 명확한 표현이 안 떠오르네요)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애플은 그 역할을 하고 있고, 그 부분을 공략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비슷한 주제로도 뉴스레터 많이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는 AI를 활용할 수 있는 하드웨어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겠군요. 사용자의 감성을 저격하고생태계를 잘 구축하는 기업이 우리나라에도 나왔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