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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의 해자: 속도가 답일까?
안녕하세요, 이안입니다. 최근 들었던 질문 중 가장 흥미로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코딩은 어차피 인공지능이 다 할 텐데, 그럼 우리 스타트업들은 어떻게 해자를 만들어야 하나요? 특히 B2C 애플리케이션은 남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너무 어렵지 않을까요?"
질문을 주신 대표님은 인공지능이 코딩을 해주기 때문에 더 이상 프로그래밍이나 프로덕트 자체가 해자가 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계셨습니다. 무엇을 만들더라도 누군가는 똑같은 걸 만들 수도 있다는 걱정이셨죠.
인공지능 시대에도 근본적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강력한 해자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그 해자는 인공지능 시대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모든 해자를 나열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만 간단하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데이터는 시간과 사용자 행동을 통해서만 축적되기 때문에 여전히 강력하고, 그 자체가 전환 비용이기 때문에 여전히 좋은 해자라고 생각합니다. 네트워크 효과는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서비스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구조로 여전히 가장 강력한 해자입니다. 브랜드와 신뢰는 특히 B2C테크, 컨슈머 제품, 금융, 의료, 교육 등 신뢰가 중요한 분야에서 강력한 해자가 되며, 함께 연결되는 커뮤니티와 생태계는 개발자 생태계, 파트너십, 사용자 커뮤니티 등이 만들어내는 고객 유치와 유지의 선순환 구조에서 해자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최고의 해자는 소비자 경험입니다. 압도적인 소비자 경험은 리퍼럴, 바이럴 등을 통해 새로운 소비자를 자연스럽게 organic하게 추가하며 동시에 사용자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서비스는 대체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기존 소비자를 lock-in하게 되고 이는 바로 브랜드, 신뢰, 커뮤니티로 이어지면서, 데이터와 네트워크 효과를 구축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진짜 진짜 진짜 좋은 프로덕트를 만들면 되는건 진리라는거죠.
어떠세요? 인공지능 시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지 않나요?
그렇다면 왜 속도가 해자라고 착각할까?
관련해서는 지난달에 a16z의 Bryan Kim이 썻던 글이 있는데, 결론은 “속도”가 중요하다는 글이었습니다. 빠르게 런치하고, 빠르게 마케팅하고, 빠르게 업데이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글이었는데, 어느정도 공감은 가지만, 100프로 동감하기는 힘든 글이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창업자들이 위에서 언급한 진짜 해자들을 구축하기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쉬워 보이는 “속도”에 매달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동시에 인공지능 시대이기 때문에 뭔가 특별히 달라졌다고 말하는 것도 어떤 비저너리 같은, 새로운 인사이트를 내놓은 느낌이 들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모두가 빨라진 상황에서 속도가 해자가 될 순 없다
속도가 해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풀어보자면, 만약 인공지능 덕분에 특정 회사만 발전 속도가 빨라졌다면 그건 당연히 해자가 될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모두의 개발 속도가 빨라졌다면 당연히도 해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중에 누군가가 조금 더 빠르게 업데이트를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인공지능시대이전의 스타트업 간의 상대적인 속도 차이와 크게 다른 해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속도가 해자라는 건, 과거의 속도와 비교해서 해자처럼 보이는 일시적인 착시 현상일 뿐이지, 지금 현재의 유효한 해자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역사가 증명하는 것: 속도는 언제나 중요했지만, 더 중요해지지는 않았다
사실 속도는 언제나 중요하면서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노트테이킹 시장의 큰 점유율을 보여주던 에버노트를 노션이 넘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디자인, 다양한 확장성, 그리고 빠른 속도의 업데이트라는 강점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도비와 피그마의 관계도 비슷하다고 생각하고요.
동시에 그 반대의 예시도 많습니다. 저와 구독자 여러분들은 안쓰지만, 젊은 분들이 많이 쓰시는 인스타그램의 '스토리' 기능은 사실 스냅챗에서 먼저 내놓은 기능이었고 인스타그램은 한참 늦게 시장에 같은 기능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더 많은 유저를 보유하고 있죠. 더 큰 그림을 보자면, 시장에 먼저 나온 라이코스보다 구글이, 마이스페이스보다 페이스북이 시장을 장악한 걸 봐도 속도가 전부는 아니었다는 게 명백합니다.
속도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낸 괴물들
이러한 착각때문에 속도에 집착하고 새로운 기능에 집착한 나머지 너무 많은 기능을 덕지덕지 붙이거나 너무 많은 것을 너무 자주 바꾸는 몇몇 인공지능 앱들이 최악의 소비자 경험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Perplexity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최대한 많고 다양한 기능을 추가하면서 기능 과잉을 불러왔고 동시에 너무 자주 너무 많은 것들을 바꾸면서 소비자들이 헷갈리고 피곤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속도에 대한 집착이 불러온 소비자 경험 저하의 좋은 예시라고 생각하고, 추가적으로 비용 구조 및 확장 부분을 함께 보면 저는 Perplexity의 미래가 걱정됩니다.
지금의 속도가 성공적인 exit로 이어질까?
좀 더 긴 타임라인에서 본다면, 물론 작은 성공 사례들이 있지만, 제가 한 가지 더 고민하는 부분은 지금의 미친 듯한 속도로 성장한 인공지능 앱들이 앞으로도 이 성장을 지속하거나 혹은 최적화되어 exit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소비자를 모은후에 계속 점점 좋은 소비자경험을 제공하면서 lock-in을 하겠다는 전략도 물론 의미없는 전략은 아니지만, 제 생각에 소비자들은 생각보다 여러번의 기회를 주지않고, 한번 떠나간 소비자를 다시 데리고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기때문에, 무작정 많은 업데이트, 테스트, 그리고 빠른 업데이트만으로 부딫치며 이겨내겠다는 것은 극초기 인공지능 스타트업들에 대한 신기함이 남아있을때는 가능했지만, 이미 많은 회사들이 인공지능을 잘 사용하고 있고, 경쟁력이 강화되는 지금 시점부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결국에는 처음부터 뾰족하고 강력한 경험을 제공한 뒤 지속적으로 의미있는 경험의 강화를 인공지능을 이용해 예전보다 더 빠르게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명확한건, 스타트업이 얼마나 많은 유저를 빠르게 모았고, 얼마나 잘난 VC의 투자를, 얼마나 많이 받았던지는 exit을 예측하기위한 proxy에 불과하고, 결국 exit하지 못한 스타트업은 먼지와 같습니다. 그런면에서 봤을때, 많은 스타트업들이 인상적인 성장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 모든걸 판단하기에는 좀 섣부르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한 인공지능 앱들의 믿지 못할 정도로 빠른 성장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라고 생각하는데, 현재 인공지능 시대의 특징은 기존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에 대비해 소비자의 증가가 비용의 증가로 이어지는 비율이 너무 높다는 부분 때문입니다. 물론 비용은 점점 낮아지고 있으니 언젠가는 해결이 되겠지만, 과연 그때까지 (1) 외부 펀딩을 통해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을지, (2) 소비자들은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아직 정답을 내어놓은 회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자면 최근 인공지능 앱들의 역사상 빠른 성장이 분명 인상적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그 회사가 인상적이라는 생각보다는 발전한 우리 기술과 시대에 대한 인상적임으로 남습니다. 그 회사가 특별해서 빠르게 성장한 부분보다는, 시대가 변하고있고 우리가 이 역사적인 변곡점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앞으로 그 회사들이 구글, 메타, 애플과 같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회사들 중 하나로 역사에 남을 것인지는 한참 더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압도적인 소비자 경험이 궁극적인 해자
결국 속도가 인공지능 시대라서 특히 더 중요한 게 아니라 속도는 항상 중요했고, 그리고 속도보다 중요한 건 소비자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이 사실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도, UI/UX도, 취향도 모두 최고의 소비자 경험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부분들이고, 바이브 코딩으로 빠르게 대충 만든 앱은 빠르게 차곡차곡 쌓아올린 전문가들의 소비자 경험을 장기적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게 결국 제 생각입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주에 조금 더 자세히 해보겠습니다).
지금이야 속도만이 중요해 보일지 몰라도, 이는 아직 인공지능 시대의 초반이기 때문에 버블이자 착시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결국 우리는 다시 소비자 경험을 가장 중시하는 방향으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 봅니다. 물론 모두가 다 함께 더 빠르게 발전하는 형태로요.
오늘도 소비자 경험무새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세계 최고의 소비자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consumer AI 앱이나 consumer product를 만들수있다고 생각하시는 대표님들께서는 ipark@sazze.vc 로 언제든지 편하게 이메일 주세요! 감사합니다!
동의합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현 시점에서 AI가 코딩을 대신 해줄거라는 착각은 소프트웨어나 앱을 개발하고 운영까지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겪고 있습니다. 그들이 대다수고, 목소리가 크기 때문에 마치 진리처럼 확산되고 있을 뿐이죠.
코드 작성을 대신해 줄 순 있습니다. 설계도 대신해 줄 수 있고요. 그런데 그걸 책임져주진 않습니다. 만들어진 코드를 직접 엮어 소비자 경험으로 전환하는 일은 사람이 해야합니다.
그래서 코드 작성 자체의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졌지만, 우리가 코드를 작성하는 이유는 비즈니스를 하기 위함이지 코딩 그 자체가 아니기에. 전체 파이프라인에서 바라보면 코딩 속도가 높아지는 건 강력한 해자가 아닙니다.
아, 물론 제 입장에선 주니어 개발자들 많이 필요 없어서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되니 해자일수는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