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안입니다. 지금 보시는 주실밸 Hot Take는 기존 주간뉴스레터와 달리 주기 없이 제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짧게 보내는 섹션입니다. 자주, 빠른 정보전달을 위해 상대적으로 팩트체크가 덜된 글들이 보내질 수 있으며, 원치않는 분들은 주실밸 Hot Take만 구독취소가 가능합니다 (이번주는 쓰다보니 길어짐…)
내일 토요일 오전에 오랜만에 유튜브 라이브를 할 생각입니다. 주제는 제가 여태까지 다른 VC분들 인터뷰했던 질문들을 제 자신에게 할 계획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번주 DeepSeek사태를 정리하는 글을 썼는데 하루만에 12,000명 넘게읽어주시면서 역대급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늘 읽어주시고 피드백주시는 모든 구독자 여러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주제넘는 글일까 며칠간 고민했습니다.
이번주 글을 쓰며계속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왜 우리는 못했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카카오가 OpenAI와 손을 잡는 것을 보면서 “결국 독자 모델을 포기하고 API나 사는 건가”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하고있는데, 왜 우리는 하지 못했는가라는 자책감과 동시에 위기감이 느껴졌습니다.
물론 저도 공감했지만, 동시에 우리는 정부 주도로 대기업에게 지원을 몰아주며 기술 발전에 몰두했던 과거의 모델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의견을 글로 남기고 싶었는데, 솔직히 이미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된 한국계 미국인이 한국에 대해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주제넘어 보일까 봐 계속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에서 군대도 다녀왔고, 지금은 한국이 실리콘밸리와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는 것을 도와주는 VC로서, 제가 의견을 나누는 것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제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기술에 대한 집착, 유교문화의 그림자, 공동체주의
과거의 성공과 영광, 그리고 그에 대한 집착
한국은 6.25 전쟁 직후, 아무도 모르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였기 때문에, 뛰어난 기술력과 근면 성실한 저렴한 노동력으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국토 전체가 폐허가 된 전쟁 직후,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한국이 우리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기술과 특허들이 생존과 발전의 유일한 무기였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 반도체, 화학, 자동차, 조선, 철강, 전자제품, 정보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루어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전략이었지만, 그 성공 경험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자부심이자 교훈이 되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많은 기성세대 기업들과 투자자들이 기술/딥테크/특허에 집중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선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 경험이 현재 우리의 선택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최근 반도체와 화학 등 한국이 강했던 산업들이 외부 도전에 직면하면서, 기술 중심의 전략에 대한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기존의 전략을 넘어 더 큰 그림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시못하는 유교문화의 그림자
제가 느끼기에는 한국 사회에는 오랜 유교 문화와 사농공상 체제의 잔재가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학문과 연구, 기술 개발이 고귀한 일로 여겨졌으며, 반면 직접 발로 뛰며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편향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많은 기업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효과적으로 소비자와 소통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뛰어나도 결국 소비자가 구매해야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세일즈 역량과 고객 중심 사고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저희 사제파트너스에게는 이 부분이 아주 큰 기회입니다).
눈에 보이지않는 소프트파워와 개인역량에 대한 무시
저는 한국은 문화적 감성, 미적인 판단, 감각적인 판단, 그리고 개인의 역량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이 부분도 어느정도 이해가 되긴하는데, 과거에 기술력으로 승부할수밖에 없는 위치였기때문에, 이러한 잡을수없는 tangible하지 않은 것들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았기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저렴하고 성실한 노동력이 필요했던 시절이었기에, 체계화된 시스템이 중요했고, 그로 인해 수치화할 수 없는 요소나 개인의 역량만으로 결과를 내는 것을 경계하고 단체 생활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시각을 다시 고민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더이상 전쟁을 치른 아시아의 소국이 아니다
전세계가 사랑하는 한국의 문화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우리는 더이상 이제 막 전쟁을 치르고, 폐허가 되어버린, 아무도 모르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한국이 문화강국으로 자리잡으면서, 그동안 소홀히 했던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산들이야말로 우리의 새로운 경쟁력의 핵심임을 깨달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한국은 단순한 기술 강국을 넘어,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K-Pop(BTS, 블랙핑크), K-Contents(노벨문학상, 오징어게임, 기생충), K-beauty, K-food, e스포츠등, 이런 한국적인 것들이 전세계의 사랑을 받으면서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트렌드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의 역할은 좋은 기술과 저렴하고 성실한 노동력으로 품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던 공장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고 문화를 선도하는 국가로 그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국내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해외 투자자들한테도 자주 듣는 질문중의 하나가 "K-beauty 그거 그저 한때 유행아니야?"라는 질문입니다. 그들에 대한 제 대답은 항상 "It's all about the ecosystem and value chain"입니다. K-contents와 틱톡은 catalyst였을 뿐이죠.
우리는 더 이상 단순한 유행이 아닙니다.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닙니다. 우리는 깊이와 역사가 있고 보편적으로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진 문화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창업가, 혁신가, 운동선수, 예술가, 리더입니다.
꼭 세계 최초의 기술로만 돈을 벌수있는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때 우리는 더이상 모든 기술을 자체적으로, 누구보다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고통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공지능의 경우, 충분한 자본과 사이즈를 가진 미국과 중국이 만들어내고 경쟁하면서 만들어준 DeepSeek나 Llama와 같이 뛰어난 오픈소스 모델들을 기반으로 기술을 연구하고 그들보다 좋은 application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카카오가 OpenAI와 협업하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카카오 측에서 오랫동안 열심히 준비했을 텐데, 하필 딥시크 직후라서 다소 김이 빠진 감이 있지만, 자체 모델 개발보다는 최신 모델을 저렴하게 활용하면서, 오픈소스 기반 연구도 계속하고, 거대한 카카오의 고객 베이스를 기반으로 고객들이 더욱 선호하는 인공지능 서비스를 만드는 것도 자존심이 조금 상할수는 있지만 충분히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건 소비자 감동과 가치창출
물론 기술 연구와 개발을 아예 포기하면 안되겠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기술은 오히려 쉬울수도 있다는 부분입니다. 특히 인공지능의 경우, 점차 기술이 수렴하고 있고, 오픈소스화되어가고 있고, 이번 딥시크사태가 기울어졌던 운동장을 다시 평평하게 만들며 우리 모두에게 다시한번 기회를 준 상황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오히려 지금은 글로벌 소비자들을 감동시키고, 영업하고, 설득하여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술없이도, 특허없이도, 그렇게 할수있는 역량을 가진 국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그 자부심을 바탕으로, 기술을 도구로 삼아, 우리만의 문화, 감각, 그리고 스토리로 글로벌 소비자들에게 감동과 가치를 전달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2.0는 이래야합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엄연한 선진국으로써, 또 세계 문화와 트렌드 리더로써, 기존 선진국들의 공장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우리가 새롭게 가진 것들을 더 잘 활용할수 있는 전략을 짜야할때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와 감각으로 승부: 기술의 힘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제는 문화의 힘, 소프트파워로 세계를 이끌어야 합니다. 우리의 독창적인 감각과 창의력을 활용해 글로벌 소비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해야 합니다. 뛰어난 기술로 만든 옷보다 블랙핑크가 킴카다시안의 인스타그램에서 입은 옷이 훨씬 더 큰 시장을 만들어내는 시대입니다.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고 확장: 새로운 인공지능시대에 미국과 중국과 경쟁하여 기술의 선두주자가 되는 것에 너무 집착하기보다 그 둘의 사이에서 fast follower로써 양쪽의 기술을 습득하고 장점을 취하면서 소비자들의 가치창출에 집중하는 것이 지금의 한국에게는 더 유리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세일즈 역량 강화: “기술만 좋으면 팔리겠지”라는 생각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소비자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세일즈’와 마케팅 역량이 필수적입니다. 더 많은 이들이 글로벌 세일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역량을 강화해야 합니다. 또한 이를 위해 해외의 다양한 기업, 기관, 투자자들과의 끊임없는 네트워킹이 필수적이고 이 부분은 저희 사제파트너스가 가장 자신있게 도움드릴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제는 기술이 중요한 시대에서, 기술을 넘어서는 시대로 나아가야합니다. 우리는 단순한 기술 국가가 아니라,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국가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고 일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안 드림